별을 따기까지 그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문학의 죽음이란 말이 거리에 휴지조각처럼 나뒹구는 시대, 문학을 삶의 이유로 삼아 자신을 송두리째 던진 사람들. 문화를 캔음료처럼 가볍게 살 수 있는 시대에 우리문화를 두껍게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잃지 않은 젊은이들. 98년 동아신춘문예의 좁은 관문을 뚫고 당당히 ‘등단’한 열두명 신인들은 결코 자기 꿈을 쉽게 이룬 신데렐라들이 아니다.
98년 동아신춘문예에는 최초로 ‘부자당선’의 기록이 세워졌다. 문학평론 당선자 김수림(23·성균관대 4년)이 그 주인공. 김수림의 아버지는 71년 ‘춘향 천의 얼굴’로 문학평론부문에 당선한 고려대 김흥규교수다.
김교수는 “아버지가 동아신춘문예 출신이라 프리미엄을 얻었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까 싶어서 오히려 동아에 응모하는 것을 말렸다”면서도 당선사실을 기뻐했다. 김수림은 남학생이면서도 한쪽 귀에 귀고리를 당당히 걸고다니는 주관이 뚜렷한 젊은이. 나이나 외양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평론의 주제는 김지하의 서정시다.
시당선자 여정(28·본명 박택수)은 형의 못이룬 꿈을 대신해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을 안은 문학도. 자신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다섯살 위의 형이 일찍이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시부문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던 것. 이후 형은 시쓰기를 포기했으나 동생 여정이 시를 쓰는 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여정에게 시쓰기는 삶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다. 암선고를 받고 몇년간 투병했던 그는 “병상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책 읽고 동인활동을 하는 게 전부였다”고 회고했다. 시인의 직감은 무섭도록 정확한 것이어서 심사위원 최승자씨는 본심에 오른 여정의 응모작 여섯편을 읽으며 줄곧 “아픈 사람이거나 아팠던 사람이 틀림없다”고 투병의 흔적을 짚어냈다.
신설된 영화평론부문의 제1회 당선자 김연(32)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중국사상사를 전공하는 철학도. 김연은 “철학의 근본적인 의미가 살아온 일을 반성하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철학이나 영화는 다 연결된 것이다. 사람사는 일에 대해 더불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영화가 가장 보편적인 장르라고 생각했다”고 영화평론에 들어선 이유를 밝혔다.
올해 미술평론 당선자인 김주환(34·미 보스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은 뉴미디어와 예술의 상호연관성을 화두로 삼은 젊은 커뮤니케이션학자. 그는 서울대와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이탈리아 볼로냐대에 유학해 움베르토 에코에게 기호학을 배웠다. 이번 평론에서 그가 작품분석의 틀로 삼은 ‘삼중삼각형모델’도 이탈리아 유학 당시 만들었던 것. 그는 앞으로 “디지털매체가 미술계에 가져올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아신춘문예의 꽃인 중편소설부문의 당선자 조헌용(26)은 “리얼리즘문학의 전통을 잇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당선작 ‘새만금간척사업소고(小考)’는 고향 군산의 얘기. 세계 최대규모의 간척사업이 진행되는 군산∼부안지역에서 생업의 터전을 잃고 삶이 뿌리뽑히게 된 사람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추적했다.
단편소설 당선작 ‘비어있는 방’은 어느 실업자의 삶의 붕괴과정을 카메라의 다중노출장치로 천천히 찍어내듯 간결하고 꼼꼼한 시선으로 묘사한 작품. 당선자 최인은 2년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져 실업의 피폐한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실업의 고통을 삭이며 소설쓰기에 몰두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는 것.
그 어느해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부문은 희곡. 본심에 오른 일곱작품이 모두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어 심사위원 이윤택씨가 고심을 거듭했다. 당선자 이향희는 현재 KBS1TV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나리오 당선자 오화영과 시조당선자 우은숙은 주위사람의 격려로 뒤늦게 글쓰기에 들어선 인물. 61년생 동갑내기인 두사람 중 오화영은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3년전부터 문화센터에서 시나리오공부를 시작했으며 우은숙은 시조시인인 직장(강원도 교육연구원)동료의 권유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음악평론 가작입선자 김현수는 생후 9개월도 채 안된 아기와 씨름하며 응모작을 마무리했다.
동시당선자 이혜용(22)과 동화당선자 김정옥(42)은 각각 98년도 최연소 최고령 당선자. 이혜용은 앳된 얼굴처럼 초등학생 같은 시심으로, 유치원선생님으로서 아이들 눈높이를 잘 알고 있는 김정옥은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당선의 좁은문을 통과했다.
이들에 대한 시상식은 14일 오후3시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18층강당에서 열린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