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몸은 누구의 것이지?”
“당연히 제 거죠.”
“그러면 이성(異性)에 대한 끌림이나 심지어 성욕은? 네 몸에서 나오는 그런 욕망은 누구의 것일까?”
“…”
주부 한모씨(41·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가 14세 딸(중2)과 건네는 대화.
“이제 너의 몸은 거의 어른이 됐어. 네가 ‘이상한’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되더라도 결코 나쁜 게 아니지. 그건 당연한 거야.”
한씨는 ‘몸’을 믿는다고 말한다. 도덕과 제도와 경직된 교육이 아이들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런 성적욕구를 죄악시하도록 채찍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너의 신체를 부리는 것은 너의 결정이야.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또 그만큼 준비가 필요해.”
그래서 한씨는 딸에게 피임법을 가르친다. 그는 믿고 있다. ‘모르는 게 언제까지나 순결은 아니며 미덕도 아니다’고.
“가장 손쉬운 피임법은 남성의 콘돔사용이야. 부작용이 없지만 특히 성경험이 많지 않은 ‘청년층’이 ‘창피함’때문에 약국에서 쉽게 구입하지 못하지. 창피하다고 피임을 회피하려는 건 아주 위험한 거야.”
뒤따르는 살정제제 피임약 페미돔 자연피임법 등에 대한 설명.
“월경이 시작된 9일째부터 15일째까지는 임신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지. 이 기간을 피해서 성관계를 가지면 피임이 가능하다는 거야. 하지만 여성의 배란은 가끔씩 불규칙하기 때문에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돼. 먹는 피임약은 구역질이나 기미가 생기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그렇다고 한씨가 프리섹스를 신망하는 건 아니다. 피임법을 딸에게 가르치는 것과 이른 나이의 성행위를 수수방관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라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이제 갓 사춘기를 지나 ‘여자’로 되태어난 딸의 신체를 인정하고 그 아이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할 뿐.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은 13세였고 ‘이몽룡과 성춘향’의 춘향은 너보다 겨우 한살 위인 15세였어. 하지만 지금의 너희 세대는 옛날과 또 달라. 인터넷 성인잡지 비디오 CD롬…. 넘쳐나는 성지식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충동 속에 살아야 하지. 성적 욕구를 독서나 취미생활로 해소할 수 있다면 가장 좋아. 그러나 자위행위도 나쁜 것은 아니야.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지. 이 엄마도 그랬었고….”
한씨는 분식점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여중생을 생각하고 연간 2백만건이 넘는 낙태의 현실을 생각한다.
“혹여 사전 준비를 못하고 성관계를 갖게 되더라도 절망하긴 일러.‘모닝 필’이라고 해서 관계 후에도 임신을 막는 약까지 있으니까. 다만 문제는 네가 이 엄마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털어놓느냐지.”
자녀의 성관계는 용서의 문제가 아닌 함께 풀어갈 대화의 문제(?).
“아이들에게 쓸데 없이 ‘용돈’(피임교육)을 주면 ‘알사탕’(조기 성관계)이나 사먹고 ‘치아’(순결)만 썩일 뿐이라고? 천만에. 그렇다고 용돈을 안줬다간 알사탕을 ‘훔쳐’ 먹게 될 걸.”
한씨는 그러나 ‘지적인 리버럴리즘’에도 반대다. ‘교양있는’ 부모가 건네는 통상적인 이해의 언어들, “너희 땐 다 그렇지. 그건 매우 자연스러운 것.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극복되는 거지”하는 따위의, 알 것같으면서도 모를 말들. 한씨는 그저 딸의 ‘발가벗은 감정’으로 돌진하려 한다. 더러우면서도 그러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엄마가 네게 이런 걸 가르치는 건 너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널 너무나 믿고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아끼기 때문이란다.”
〈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