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펠리니의 「귀도」와 여균동의 「구이도」

  • 입력 1998년 1월 9일 08시 23분


우리 삶을 찾아오는 재앙에는 질병이나 가난, 전쟁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에는 ‘무의미한 삶’이라는 무서운 녀석도 있다. 현재 자신의 삶이 권태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고 권태롭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까지도 위험하게 그 녀석에게 노출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종교인들은 종교적 진리에 귀의함으로써, 실존철학자들은 우리가 순간순간 그 알 수 없는 세계와 생 속으로 자신을 과감히 던져나감으로써 간신히 그 무의미로부터 벗어나 인간다움이 유지된다고 보았다. 무의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류가 찾아낸 방법 중에는 예술이라는 것도 있다. 특히 예술이라는 것을 직업적 차원이라기보다 자신이 사는 유일한 방법으로 받아들인 이들에게는 창작을 해내지 못하는 불임 상태란 바로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일이 된다. 작품이 안 팔려 굶어죽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작품이 되지 않아 자살충동에 빠지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½’에 나오는 영화감독 귀도는 그런 예술가의 전범이다. 8편의 영화를 만들었던 펠리니는 아홉번째 작품으로 넘어가는 ‘성찰의 작품’이란 뜻으로 ‘8과 ½’이란 제목을 붙였다. 귀도는 아마도 어느 영화판에나 있어왔을 문제들, 자신의 무질서한 상념이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할 것인가의 고민으로부터 시작해서 제작자와의 갈등, 배우, 상상력 고갈…에 시달리며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 그 불임상태는 못난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적 낭패의 차원을 넘어 그의 생 자체를 의미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에게 가해지는 가장 비수같은 목소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는 끝났어. 그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어.” 귀도가 번민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바로 자기 응시에 성공했을 때다.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나! 바로 이 자신의 상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상태 자체를 주제화해냈을 때 귀도는 진짜 자기 얘기,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8과 ½’을 만든 펠리니 자신의 이야기였다. ‘8과 ½’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수상작이 된 이유는 진실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노고에 대한 시선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균동 감독의 ‘죽이는 이야기’의 주인공 구이도는 펠리니 감독의 ‘8과 ½’의 주인공 귀도의 패러디다. 미국영화계의 한 정점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 기고한 펠리니를 회고하는 글에서 ‘우리는 모두 귀도와 같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죽이는 이야기’의 구이도는 예술을 자신의 삶의 형식으로까지 일치시킬 용의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던, 이에 대한 자조와 장난이 섞인 초상이다. 아마도 후배 감독들은 구이도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김연(98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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