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 사람들의 소지품을 하늘로 날려 보낸다. 화이트씨의 우산이 뒤집힌채 날아가고 꼬마 프리실라의 풍선이 높이 떠오른다.
모자도 획, 쓸려가고 끈 떨어진 연도 공중에서 빙빙 맴돈다.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도 몸을 뒤친채 하늘 저 멀리 내던져진다. 코를 닦던 손수건도, 판사님이 쓰고있던 가발도 바람이 낚아챘다.
사람들은 바람에 날리는 물건을 잡으려고 아우성이다. 손을 흔들며 바람을 쫓아 이리저리 허둥댄다. 그러나 바람은 계속 심술이다. 집배원 아저씨가 들고 있던 편지들이 소용돌이치고 깃대에서 펄럭이던 국기마저 획,뜯겨나간다.
바람은 더욱 더 기세가 등등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줄 알아? 바람이 더욱 더 성을 내 큰 재난을 불어오지 않을까, 하고 사람들이 잔뜩 불안해 있는 바로 그참에 말이야.
바람은 마치 싫증이라도 난 듯, 가지고 놀던 그 많은 물건들을 마구 뒤섞기 시작하더니 그냥 땅 밑으로 내동댕이치고 만거야. 그리고는 그만이야. 휑, 바다로 불어가 버렸거든. 그게 끝이거든.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게 아이들이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괜한 일에 트집이다. 한번 앙탈을 부리기 시작하면 뉘라서 당할까. 진짜, 진짜 성가신 존재다.
그러면서도 또, 속이 꽉 차 있는게 아이들이다. 어른들이 찔끔, 놀랄 정도로 입바른 소리를 해댄다. 어떨 땐 도(道)를 깨친 선사처럼 맹랑하게 굴어 어른들을 머쓱하게 한다.
더욱이 요즘 아이들은 못말린다. 어른들의 ‘케케묵은’ 눈높이로 재려 들었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
시공주니어에서 펴낸 ‘바람이 불었어’. 여러 형제들 사이에서 분명 장난꾸러기로 자랐을 동화작가 팻 허친즈여사의 대표작이다. 전혀 예상치못한 결말부분의 반전이 환한 웃음을 자아낸다.
“좋은 어린이 책은 어른들이 보기에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그림동화는 ‘그렇겠지, 그렇겠지…’하는 기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데 묘미가 있다.
화가지망생이었던 그의 그림도 밝고 맑은 웃음을 담았다. 대상의 특징만을 쏙 뽑아 굵은 선으로 부드럽게 표현했다. 물을 많이 타서 수채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언뜻언뜻 비치는 원색의 느낌이 시원하다.
허친즈여사의 또 다른 화제작 ‘티치’는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조마조마하기만 한 아이들의 깜찍한 ‘속내’를 보여준다.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인 아이들. 그러나 마음만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않다.
티치는 아주 작은 아이. 누나 메리는 티치보다 조금 크고 형 피트는 티치보다 꽤 크다.
그래서 피트는 아주 커다란 자전거를 탄다. 메리는 피트보다 조금 작은 자전거를 타고 티치는 조그만 세발자전거를 탄다. 피트는 나무 꼭대기까지 연을 날린다. 메리는 지붕까지 연을 날리고 티치는 어떨까. 바람개비를 손에 쥐고 돌린다.
피트는 큰 북을 친다. 메리는 트럼펫을 불고, 티치는 자그마한 나무 피리를 분다. 피트가 커다란 톱으로 톱질을 하면 메리는 큰 망치를 들고 티치는 못을 든다.
어느날 피트가 커다란 삽으로 흙을 팠다. 메리는 큼직한 화분을 들고 오고 티치는 작은 씨앗을 가져왔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줄 알아? 그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더니, 자라고 또 자라서 마침내는 형 피트와 누나 메리의 키보다도 훨씬 더 커버린거야. 어린 티치가 어땠게? 그냥 씩, 웃었지….
〈이기우기자〉
▼전문가 의견▼
팻 허친즈의 그림책에는 늘 해학과 따뜻함, 홀로가 아닌 여럿의 소리가 담겨 있다. 그래선지 그의 책을 만난 아이들은 마치 제 베개처럼 안고 집안을 뛰어 다닌다. ‘티치’는 세아이의 크고 작은 몸집을 여러 사물과 공간 속에서 대비시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크고 작음, 높고 낮음, 빠르고 느림이 계속 그려지면서 결국은 작은 것의 소중함이 강요가 아닌 자연스런 웃음과 따스함으로 전달된다.
‘바람이 불었어’도 바람으로 인한 소동과 혼란을 결국은 웃음과 고요함으로 정리한다.
노경실<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