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갯머리 동화책 읽어주기…잠들기전 아이들과 정겨운 시간

  • 입력 1998년 1월 11일 21시 20분


2차대전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하던 60년대초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의 한 동화작가가 제안한 운동이 전 일본열도의 젊은 부모들 사이에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잠자기 전에 10분씩 아이와 엄마가 함께 책을 봅시다’. 운동주창자인 무쿠 하토주. 재기하는 조국이 진정으로 국부(國富)를 축적하는 길은 2세교육에 있다고 믿었다. 교육의 출발점은 아이들을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주고 싶은 부모들이여, 잠들기 전 아이들 곁에서 책을 읽어주세요. 오늘 아이들 마음 속에 씨앗으로 던져진 당신의 책 읽는 목소리가 그 아이들의 평생 양식이 될 겁니다.” ‘먹을 것 덜 먹고 입을 것 덜 입어도 자식교육비는 안 줄인다’는 한국의 부모들. 국제통화기금(IMF)한파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도 ‘27개월된 아이가 한글을 읽는다’는 유아교육지 광고가 엄마들 사이에 뜨거운화제가되는교육열국(熱國),한국. 그러나 아동교육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지혜를 낚을 그물을 주고 싶다면 어떤 과외수업보다도 먼저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모와의 책읽기 체험은 아이들에게 지적활동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책의 그림이나 글자만이 아니라 냄새와 질감에까지 반응합니다.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그 순간의 부모 숨소리와 체취마저 기억하죠. 부모와의 따뜻한 유대 속에서 책의 세계로 인도됐던 아이들은 평생 책읽기를 ‘기분 좋은 일’로 습관화할 수 있어요.”(동화연구가 선안나씨) 책읽어주기는 젊은 부모들이 안달하며 가르치고 싶어하는 문자학습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고개도 못 가누는 신생아를 품에 안고 부모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보편화된 미국. 80년대 초, 아동의 언어발달과정은 습자 같은 ‘지시적’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라는 아동발달상의 커다란 패러다임 전환이 있은 뒤 미국부모들의 책 읽어주기는 더욱 극성스러워졌다. 대통령 부인 힐러리 클린턴도 맞벌이엄마로서의 육아체험을 담은 저서 ‘집밖에서 더 잘 크는 아이들’에서 “우리 부부는 아무리 바빠도 딸아이의 베갯머리에서 늘 동화책을 읽어주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부모가 대통령선거로 눈코뜰새 없이 나돌고 성추문과 정치자금스캔들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도 그 딸 첼시는 흔들림 없이 학업에 매진, 지난해 미국의 내로라하는 대학들로부터 일제히 입학허가서를 받아쥔 끝에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다. 여덟살, 다섯살배기 남매의 엄마인 문화센터 논술강사 정진씨(35·서울 서초구 반포본동). 지난해부터 아이들이 잠들기 전 20∼30분을 ‘책읽어주는 시간’으로 정해 실천하고 있다. 가끔씩 피곤해 책읽기를 건너뛰고 싶어도 이제는 아이들이 더 성화다. “책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보다 하루에 몇분이라도 아이들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더 소중합니다. 책 읽어주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졸리지 않아도 편안한 얼굴로 잠을 청해요.”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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