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닥친 작년 12월. 유명예술가들의 공연이 잇따라 참담한 적자로 막을 내리거나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좌초되던 시점이었다. 서울 정동극장은 가족뮤지컬 ‘나무꾼과 선녀’를 무대에 올리고 ‘모험’을 감행했다. 가뜩이나 분위기가 위축돼있던 기업체 노조사무실을 찾아 나선 것.
“노래방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따져보았습니다. 현실을 피해보려는 욕구, 가족과 함께 즐기자는 분위기…. 그걸 활용하면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홍사종(洪思琮·43)극장장의 말대로 모험은 성공했다. 대기업 노조원들이 8백여명 몰렸고 공연은 흑자를 올렸다.
4백석의 정동극장은 ‘극성스런 공연장’으로 꼽힌다. 공연단체에 무대를 빌려주어 객석을 채우는 다른 공연장과는 다르다. 작년에도 자체기획 공연만으로 수입의 86%인 7억9천만원을 벌어들였다. 사물놀이 판소리 등을 선보이는 ‘전통예술 상설무대’는 대표적 성공사례. 내외국인 관광객이 주 공략대상이다. 호텔 13곳과 제휴, 투숙객에 공연장 입장료 할인혜택을 주고 있으며 여행사 23곳의 패키지에 공연 감상을 포함시키도록 했다. 6백여대의 모범택시에 공연팜플렛을 배치, 홍보했다. 그 결과 작년에 8천여명의 외국인이 이 공연을 찾았다. 이들이 낸 입장료만 7만7천달러.
관객 끌어들이기 아이디어들을 쏟아내는 홍극장장은 극작가 출신의 예술전문경영인.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극장에서 공연기획을 담당했고 96년 정동극장 민영화와 함께 극장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앉아서 관객이 오기만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관객을 확보해놓고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방식의 마케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흑자만이 공연장의 미덕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에만 기댈 수 없게 된 지금, 정동극장의 적극적인 마케팅은 문화계가 열어가야 할 중요한 활로를 암시한다. 알찬 작품을 손에 들고 숨은 관객을 찾아나서면 공연계도 경제위기 한파를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