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극「불효자는 웁니다」,흰머리 관객 몰려 성황

  • 입력 1998년 1월 12일 19시 48분


눈물바람도 국제통화기금(IMF)때문인가. 연탄,두툼한 내복,재봉틀 등 ‘가난했던 시대의 상징’이 다시 등장하면서 복고풍 정서의 신파극도 제철을 맞았다. MBC가 ‘눈물없이는 못보도록’ 작정하고 만든 신파극 ‘불효자는 웁니다’에 중노년 관객이 몰리고 있다. 10일 개막하기도 전에 예매창구마다 하루 1천만원 이상씩, 이미 2만5천장이 부모들을 위한 ‘효도 티켓’으로 팔려나갔고 지난 주말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3천8백여 객석은 만원을 이뤘다. 세종문화회관 개관 이래 관객 평균연령이 가장 높다고 할 만큼 ‘실버 관객’이 많은 것이 특징. 할리우드영화가 내걸린 극장이 썰렁하고 거리엔 빈 택시가 즐비한 IMF시대에 ‘이상한 불효자 현상’이 일고 있는 셈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다시 어머니생각이 나는 게 아닐까요. 우리 어머니세대가 못먹고 못입으면서 우리들을 공부시켜 이만큼 살게 해주었는데 나는 그동안 뭘했나, 어머니를 잊고 살아서 지금 벌받는 게 아닌가 하면서요.”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영원한 아킬레스건이죠. 자기가 불효자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마침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신파극을 하니까 ‘제 심정도 이렇습니다, 어머니’하면서 효도하는 마음으로 구경이라도 시켜드리는 거지요.” 예매창구에서 만난 20, 30대 남성들의 설명이다. 이 작품을 기획한 MBC측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불효자라고 생각하는 ‘불효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며 “때마침 IMF한파를 맞자 이 작품이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어 폭발적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IMF에 공을 돌린다. 연극은 출세한 아들(이덕화 분)이 어머니(나문희)의 무덤에서 통곡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하는 애달픈 노래가 흘러나오고, 생선광주리를 이고 다니며 뒷바라지한 어머니 덕분에 아들이 서울 일류대학에 입학하게 된 과거가 돌이켜진다. 이제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까지 했으니 신파극의 공식대로 부잣집 딸과 결혼하기 위해 고향애인을 배신할 차례다. 버림받은 여자는 창녀가 되고, 어머니는 자식에게 짐이 될까봐 10년을 죽은 사람처럼 지내는데…. 사이사이 ‘여자의 일생’ ‘부모’ ‘비내리는 고모령’같은 흘러간 노래가 자막과 함께 나오고 ‘계산된 유치함’으로 범벅된 영탄조의 대사와 과장된 연기도 빠지지 않는다. “부모들이 헐벗고 굶주리면서 자식만은 악착같이 공부시킨 덕분에 우리가 놀라운 경제성장을 했다” “효도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는 설교도 있다. 젊은층은 실소를 터뜨리지만 실버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는 대조적 모습이다. “자식들이 표를 주기에 왔지. 옛날 생각 나고 좋구먼.”(도기정·66) “우리 어머니들은 다 저랬어.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지. 참 자식이 뭔지….”(김정근·73) 공연은 18일까지 화수 오후7시반, 목∼토 오후3시 7시반, 일 오후2시 6시. 02―368―1515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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