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처방」, 「비즈니스 닥터」가 뛴다

  • 입력 1998년 1월 18일 20시 26분


20대후반에서 30대중반. 재롱떠는 아기, 아직 젊고 싱싱한 배우자…. 집에만 가면 함박웃음이 끊이지 않는 ‘안정된 청춘’이지만 출근하면 한참 뒤쪽 줄로 가서 차렷. 20,30대의 ‘미즈&미스터’들이 거의 전권(全權)을 행사하는 분야도 없지 않다. 치열한 경제전쟁터의 한복판을 뛰고 있는 ‘기업 컨설턴트’가 대표적 직군.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세계적 컨설팅회사 모니터컴퍼니 한국지사. 전자 잠금장치가 돼 있는 출입문을 지나 푹신한 카펫을 밟으며 사무실에접어들면바로치열한경제대란 현장이 축소판으로 펼쳐진다. 하루아침에 기업이 무너지고 주인이 바뀌는 구조조정의 시대. 기업을 인수합병(M&A)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느 자회사를 잘라내야 할까, 계획대로 대규모 출혈 투자를 감행해도 좋은가…. 앳된 얼굴의 컨설턴트들이 저마다 수천 수만명의 종업원이 딸린 거대기업의 명운이 왔다갔다할 프로젝트를 껴안은 채 씨름하고 있다. “컨설턴트 일은 혼을 바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어요. 젊음의 열정과 체력으로 이겨내는 거지요.” 이 회사 오규석이사(35). 대학 82학번으로 컨설턴트 경력 8년째. 서울대경영대학원 동기인 정인철이사와 함께 이 회사 15명의 상근컨설턴트 중 최고참이다. 막내는 91학번. 사장과 부사장은 미국 본사 임원들이 겸임하고 있으므로 82학번이 직원 25명인 한국지사를 이끄는 실질적 리더다. 이같은 연령분포는 다른 컨설팅회사들도 마찬가지. 기업의 의뢰로 경영전략 전반에 걸쳐 세밀히 청진기를 대고 처방을 내리는 ‘비즈니스 닥터’ 컨설턴트. 경제전쟁의 한복판에서 부대끼는 이들의 현실인식은 관계나 학계 전문가보다 치열하고 현실을 명확히 반영한다. 행정고시를 거쳐 재정경제원 사무관으로 일하다 96년 컨설턴트로 변신한 길경진씨(33)는 “우리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선 하루빨리 변해야 하는데 아직 변화의 속도가 느린 것 같다”고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는 컨설팅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장기경영전략과 제품차별화전략 수립 등 전통적 업무는 줄었다. 대신 M&A 등 기업구조조정 자문의뢰가 예전의 5∼6배로 폭증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엔 휴일도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씩 일해야 한다. 외국기업이 한국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일에 낄 수도 있다. 일하며 알게 된 기업의 비밀은 절대 입 밖에 낼 수 없다. 때문에 이들 ‘기업 전문의’의 세계는 스트레스가 많다. 그만큼 보람도 있다. “투자규모가 2억달러에 이르는 한 그룹의 타산업 진출 계획을 살펴본 뒤 제동을 걸었지요. 당시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았고 ‘젊은 애들이 뭘 안다고 그래’식으로 공격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보고서는채택됐고결과적으로기업관계자들은지금‘그때투자하지 않기를정말잘했다’고 고마워합니다.” ‘머리부터 손발까지’를 모두 해내야하는 컨설턴트들. 철저한 프로근성과 책임감 열정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느라 여념이 없는 우리 시대의 ‘미즈&미스터’들이다. 〈이기홍기자〉 ▼ 컨설턴트가 되려면 기업 컨설턴트는 선진국에선 이미 대학 및 대학원졸 취업희망자들에게 최고 인기직종 중 하나. 국내 대학가에도 최근 컨설턴트 입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컨설턴트가 되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모니터컴퍼니의 서종수컨설턴트는 후배 지망생들에게 “성취감이 큰 매력있는 직업이지만 일 자체는 피를 말리는 작업의 연속”이라는 충고를 먼저 던진다. 컨설팅이 시작되면 지식 체력 열정은 물론이고 인맥 등 동원가능한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아예 고객의 회사로 출근, 호흡을 같이하고 그 회사 직원들이 퇴근한 뒤 본사에 돌아와 정리 분석한다. 별보기 퇴근이 다반사. 맥가이버같은 순발력과 돌파력도 필수. 예를 들어 고객이 특정 기업을 인수합병(M&A)해도 괜찮겠느냐고 의뢰한 경우 우선 M&A대상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상세한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망할 처지에 놓인 기업에서 순순히 협조해줄 리 만무. 더구나 ‘(신분 등에 대한)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객의 이름을 밝혀선 안된다’는 컨설턴트 세계의 내부 윤리를 지켜야 한다. 성취감과 보람도 크다. 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부쩍 커가는 것을 실감한다. 이들의 세계에서 보수를 밝히는 것은 금기지만 한 컨설턴트는“대기업에다니는학교 동창들의 3∼4배 수준”이라고 귀띔한다. 컨설턴트 채용은 주로 상시(常時)모집. 한 회사가 보통 1년에 4,5명 정도를 뽑는데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 쇄도, 수백대1의 경쟁률. 경영 경제학 전공이 많지만 공대출신도 적지 않다. 전형방법은 인터뷰를 통해 △논리적 사고능력 △진실을 설득력 있게 밝힐 수 있는 정직성 용기 표현력 △남의 충언을 받아들이는 태도 등을 집중 점검한다. 인터뷰는 보통 2,3개월 걸린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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