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 실학의 선두주자요, 진보적 개혁사상가였던 이익. 하지만 그는 여성에 대해서 만큼은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그의 여성관을 보자.
여자는 열심히 일하고 검소해야 하며 남녀칠세부동석을 지켜야 한다. 독서나 강의는 남자가 할 일이지 여자의 일은 아니다.
여자들은 아침상을 준비하고 제사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길쌈도 해야 하는데 언제 책 읽을 시간이 있겠는가. 학식이 있다는 부인들을 보면 배운 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나쁜 짓만 할 뿐이다.
부녀자들은 왜 아름답게 화장하여 남의 눈에 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화장한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이 모두 점잖은 게 아니다. 평생 남편이나 모시면 될 일이지 대체 무엇 때문에 남들에게 치장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가. 엄하게 타일러야 할 것이다.
이혼에는 적잖은 폐해가 따른다지만 이혼법이 없다 하여 문란한 여자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요즘 풍속이 변하여 집안에서 부인들의 권세가 대단해졌다해도 죄있는 아녀자를 쫓아낼 수 없다면 대관절 어찌하겠다는 말인가. 아이들 교육에도 커다란 피해를 줄 것이다. 여자들이 갖가지 잘못을 저질러도 도저히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법이 없다해서 이혼을 금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익은 왜 이처럼 보수적인 여성관을 지녔던 것일까. 우연히 그의 주변에 그릇된 여성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왕실이나 귀족가문 여성들의 분에 넘치는 행동으로 국정이 문란해진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또 당시의 경제성장 속에서 여성의 의식과 활동이 크게 부각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이었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익의 보수적 여성관도 그의 개인적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조선사회 전체의 한계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