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로 가는 과도기. 그 전형적인 현상은 ‘권력 이동’이다. 한국에도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간 미국에는 클린턴―고어, 영국에는 토니 블레어, 일본에는 하시모토, 중국에는 장쩌민(江澤民), 러시아에는 옐친정부가 들어섰다. 이들 정부는 모두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한국의 정권교체도 그 심층 동인(動因)은 시대정신의 교체이다.
21세기의 전도사인 앨빈 토플러는 권력의 ‘교체’만이 아니라 ‘이동’이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권력의 본질 자체가 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에서 ‘초(超)기호경제’로 압축되는 새로운 부의 창출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지식과 정보체계로 구성된, 전혀 새로운 성격의 권력이 떠오르고 있다. 토플러가 보는 21세기의 본질은 ‘지식과 정보를 둘러싼 싸움’이다.
토플러를 인용하여 정보사회의 편리함과 선진성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토플러는 정보화 사회에서의 소비자 생활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 사이의 치열한 생존경쟁과 권력투쟁을 말하고 있다. 그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싸움은 더욱 확대되고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권력이동’에서 토플러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기업의 인수합병(M&A)과 구조개편 사례들은 앞으로 계속될 훨씬 더 크고, 진정 새로운 기업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유럽의 변화와 소련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변화도 앞으로 다가올 범세계적 권력투쟁에 비하면 소규모의 서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 유럽 및 일본간의 대립관계도 아직은 본격화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산업문명이 세계지배를 상실하고 새로운 세력이 지구상에 높이 솟아오르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권력투쟁이 유발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고 있다.
세계표준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 더많은 정보와 지식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은 오늘도 갖가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 정보전쟁은 기업의 조직을 수평적으로 개편하는 동시에 CIO로 불리는 중역급 ‘사상경찰’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상상할 수 없는 첩보전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토플러 부부가 25년에 걸쳐 만든 노작으로 이 시대의 명작이다. 이론적으로는 ‘초기호경제학’과 ‘권력이동의 정치학’이라는 21세기의 정치경제학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경제는 디지털 기호로 구성되는 지식과 정보가 자본을 대체하고 섬광기업이라야만 살아남는 활동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새로운 부는 전적으로 데이터―아이디어―상징 및 상징체계의 즉시적인 전달과 보급이란 체계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다. 초기호경제의 등장을 수반하는 권력투쟁은 지식을 다루는 능력과 언론매체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핵심적인 무기이다.
공장굴뚝 문명의 사양화와 함께 이 체제를 운영했던 관료와 경영자들은 모험적인 투자가와 흥행업자, 새로운 조직가와 경영자들로 구성된 게릴라 부대에 격파당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이들은 다수가 반관료적인 개인주의자들이며 그 모두가 컴퓨터로 시작해서 미디어로 일을 끝내는 지식의 연금술사들이다.
세계적인 권력자들의 교체현상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권력이동은 산업의 교체―문명의 교체와 함께 결국 엘리트의 교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지식의 장악이야말로 인류의 모든 조직체에서 전개될 내일의 전세계적 권력투쟁의 핵심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토플러는 △보이지 않는 정당 △정보기술 △이미지정치 △미디어정치 △영상정치를 21세기 권력투쟁의 새로운 원천으로 보는 것이다.
토플러의 저작은 21세기의 정치경제학 교과서인 동시에 컨설턴트의 기능을 갖는다.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부와 권력의 창출체계를 만들도록 충고한다. 관료주의란 칸막이 방을 넘어 자율적인 탄력적 회사 체제를 만들어야 하고 정보지식 전쟁에 기꺼이 참전할 수 있는 네트워크형의 권력 체제를 만들어야 21세기에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광식 (21세기한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