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고금리가 고착화하면서 고객들의 금융상품 투자패턴이 더욱 기민해지고 있다.
투자 규모에 따라 금융거래 양상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서민들은 대출금을 갚는 것에 주력하고 고액예금자는 뭉칫돈을 불리느라 바쁘다. 재테크에도 빈부(貧富)의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얘기.
▼적금 부금 중도해지가 늘어난다〓적금과 부금, 예금 가입자는 대부분 서민들. 한푼 두푼 모아 목돈을 만들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예적금상품이 최근 대출금리가 폭등하면서 중도해지가 부쩍 증가했다.
회사원 이모씨(32)는 “최근 1천만원을 예치해둔 비과세가계저축을 깨고 은행에서 빌린 마이너스대출금을 갚았다”고 말했다. 비과세상품은 중도해지하면 이자소득세를 물게 돼 불리하지만 연 17%까지 치솟은 대출금리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5백만∼1천만원짜리 소액고객들이 떠나가자 은행들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수신팀장은 “서민들이 매달 꼬박꼬박 저축하는 돈은 가장 안정적인 대출재원이었다”며 “이들이 이탈하는 것은 은행 경영의 중대한 적신호”라고 우려했다.
▼금리에 민감한 뭉칫돈들〓뭉칫돈을 굴리는 거액투자자들은 ‘자기 세상을 만난 듯’활개치고 있다. 1%포인트라도 금리가 높다면 주저하지 않고 종전 금융상품을 깬다. ‘말을 갈아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은행들도 이들을 붙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문제는 고객의 금리민감도가 예민해지면서 금융상품 예치기간이 1∼3개월로 초단기화했다는 점. 사정이 이렇다보니 은행들도 자금운용기간을 짧게 가져갈 수밖에 없고 1년이상 ‘장기’대출을 내주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부실금융기관 상품 인기〓얼마전까지 예금인출사태로 곤욕을 치렀던 것과는 1백80도 달라진 양상이다.
23일 현재 제일은행 으뜸재테크예금에 3조5천억원, 서울은행 슈퍼실세예금에 3조원이 각각 예치됐다. 또 현재 영업중인 종금사 어음관리계좌(CMA)에도 지난 21일 하루 동안 8백억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신규예치보다 인출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놀랄 만한 변화다. 금리가 연 20%이상으로 높은데다 원리금은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금융계는 ‘안전불감증’ 탓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 대형은행 임원은 “좋게 표현하면 고객들이 정부 말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정부 보증을 담보로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자지급식 상품이 뜬다〓실업자가 늘면서 갑자기 부각하고 있다. 요즘 각 은행창구에는 월이자지급식 상품을 문의하는 중년신사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은행들도 정리해고가 본격화할 것에 대비,월이자지급식 상품 개발과 홍보에 주력한다는 계획.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워낙 불투명해 퇴직자들이 새 사업에 손을 대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퇴직금을 까먹지 않고 생활비를 해결할 요량으로 많이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강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