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세계서 가장 부르기 어려운 노래」쉽게 불렀다

  • 입력 1998년 2월 3일 20시 27분


‘세상에서 가장 부르기 어려운 노래.’ 한국이 낳은 지구촌 주역가수 조수미가 그 노래를 제압했다. 기네스북에 실린 항목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노래를 만들자’고 마음먹은 사람의 말은 기록에 남아 있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오페라 대본작가인 호프만 슈탈에게 보낸 편지다. “오페라의 체르비네타 역을 맡은 가수가 장대한 콜로라투라의 아리아를 부르게 합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콜로라투라의 기교가 발휘되도록 하는 겁니다…체르비네타 역이야 말로 진짜 주역이니까요.” 콜로라투라란 플루트 등 목관악기용으로 개발된 어려운 기교를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게 만든 창법. 모차르트 ‘밤의 여왕의 아리아’처럼 아찔할 정도로 높은 소리를 콕콕 찍어내는 노래나, 높은 음역에서 낮은 소리로 내리꽂히는 빠른 노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기교를 ‘상상할 수 있는 한’ 모두 끌어모았다면 제 아무리 일류가수라도 노래하기 어려울 것은 뻔한 이치. 문제의 노래는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에 나오는 아리아 ‘고귀하신 공주님’. 예전부터 이 아리아는 어렵고 길고 소리가 높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노래로 소문이 나 있었다. 영국의 버진레코드사가 새 음반을 내기로 결정하면서 문제는 더 커졌다. 널리 알려진 1916년판 악보 대신 오페라가 처음 발표되던 1912년판 악보를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 이 악보에서는 문제의 노래가 한 음(장2도)이나 더 높을 뿐만 아니라 40마디가 더 길어 연주시간만 13분에 달했다. 작곡자가 옛 악보를 손본 데는 “도저히 연주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는 소프라노들의 원성이 한 몫을 했다. 오래 잊혔던 옛 악보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음반사와 지휘자 켄트 나가노는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았다. “조수미라면 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조수미의 목소리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에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정평이 나 있었다. 규모가 커진 이 아리아에서 조수미는 자기 몫을 100% 이상 해냈다. 붉은 불꽃의 온도를 지나 하얗게 빛나는 목소리의 열기와 광채, 고음에서 미끄럼틀타듯 떨어지는 콜로라투라의 정밀함은 절로 탄성이 나오게 만든다.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어려운 악보 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조수미의 음성은 ‘최고의 콜로라투라’라는 찬사가 그에게 돌아갈 만 하다는 믿음의 징표가 된다.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는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실내 오페라. 반주악단의 숫자가 적고 극의 길이도 짧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서는 드물게 ‘간소한’ 작품에 속한다. 02―3449―9423∼4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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