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정장차림으로 산사(山寺)를 찾는 중년 남성,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교회를 찾는 사람들….
실직 부도 도산 등 IMF한파의 충격을 달래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종교계도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도심에 위치한 종교단체나 대도시 인근의 사찰은 갈 곳이 마땅찮은 실직자들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쉼터를 속속 개설하고 있다. 실직자 쉼터의 테이프를 끊은 것은 구세군 대한본형. 지난달 8일 서울 중구 정동 구세군중앙회관 2층에 다일사쉼터(02―722―9191)를 열었다. ‘다일사’는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이라는 뜻.
25평 규모에 휴식실 정보실 상담실을 갖추고 간단한 식사와 음료, 취업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쉼터 관계자는 하루 평균 50여명의 실직자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비자보호위원회도 지난달 19일 강남구 역삼동 총지사 경내 법장원 건물 2층에 오뚜기모임터(02―3452―7486)를 개설했다. 15평 정도의 사무실에 팩시밀리 복사기 컴퓨터 전문서적등을 설치해 실직자들이 상호연락과 문서 송수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순복음선교연합회도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본관 6층에 실직자를 위한 직업정보센터(02―782―4851)를 개설했다. 화∼토요일은 오전 9시∼오후5시, 일요일은 오전9시∼오후7시까지 구인―구직정보를 제공하고 취업에 필요한 재교육도 알선해 준다.
서울 영락교회는 28일 오후7시 구내 50주년 기념관에서 ‘실직자돕기 열린 콘서트’를 개최한다. 영락교회는 홍수철과 에브라임찬양단 등이 출연하는 콘서트의 수익금으로 실직자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경기 남양주 불암사(주지 일면스님)는 이달중순 경내 선방인 30여평 규모의 동축당을 실직자 쉼터로 꾸미고 직업알선을 위한 전문상담원도 둘 예정이다. 대구 동화사 부설 불교사회복지회도 이달 중순 대구시내 20칸 규모의 한옥에 실직자 쉼터를 마련해 재취업을 돕기 위한 컴퓨터 영화회화 등의 강좌를 개설할 예정.
정신적 안식을 위해 심산유곡의 산사나 유명 기도처를 찾는 실직자들이 늘어나면서 주요 사찰들은 이들에게 고난을 극복할 지혜와 용기를 불어넣어 줄 실직자위안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전남 장성 백양사(주지 지선스님)는 3월부터 실직자를 위한 본격적인 수련프로그램을 시작한다. 매달 한 차례씩 4박5일 일정으로 산행 3천배 참선 등 극기를 위한 프로그램과 교양강좌 취업정보 제공 등으로 꾸며질 예정. 영천 은해사(주지 법타스님)도 대규모 실직사태가 예상되는 3월부터 실직자 단기출가학교를 개설한다. 해남 대흥사(주지 천운스님)와 춘천 석왕사(주지 백운스님)도 단기 수련회 형식의 실직자위안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법타스님은 “실직자들이 다방이나 공원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들이 가진 실무경험을 방치하는 것”이라며 “중생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이들이 새롭게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종교의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말했다.
〈김세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