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도종환씨, 에세이집 「그때 그 도마뱀은…」펴내

  • 입력 1998년 2월 6일 08시 55분


강물은 흘러오는 만큼 흘려보낸다. 그래서 늘 맑다. 제 것으로 가두려는 욕심을 비워, 나날이 새롭다. 산은 어떤가. 새들을 불러 그 그늘에 여린 삶을 깃들이게 하지만 ‘집세’를 받지 않는다. 산은 스스로를 챙기지 않는다. 하늘은 더욱 그렇다. 수많은 철새들에게 길을 터주면서도 단 한 마리, 제몫으로 묶지 않는다. 새들의 발자국 하나 훔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은 더욱 넓고 푸르다.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씨. 그는 비우라 한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고 한다. 비우지 않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10여년간을 전교조 해직교사로, 시인이자 문학운동가로 닳고 할퀴고 부대껴온 그. 시(詩)로는 다 풀 수 없었던 이야기들, 그 마음의 편린을 담아 에세이집을 냈다.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사계절). 어찌 마음의 앙금이 없으리오만 그 갈피갈피엔 노장(老壯)의 여유와 넉넉함이 배어난다. 그는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흙 하나 묻히지 않고 피어나는 연꽃을 사랑한다. 눅눅한 강가나 늪지에 알을 낳지만 뻘흙 속에 살지않고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을 찬미한다. 많은 벼들이 함께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기 존재의 거리를 지키는 의연함을 시샘한다. “멈추어 있는 구름 같은 마음 한 가운데 솔개가 날고, 고요한 물결 같은 마음 속에 물고기가 뛰노는 기상. 이것이 진정 도를 깨달은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심(恒心)을 지니고 싶은 시인. 하지만 그렇게만 살 수 없는 삶의 그물이 가끔은 버겁다. 그래서 그는 ‘누가 누구인지 모를’ 이런 애교스런 일화를 들려준다. 옛날, 두 선객(禪客)이 한 여인 곁을 지나게 됐다. 여인은 갑자기 불어난 개울물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 선객은 여자와 신체를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계율을 따라 혼자서 개울을 건넜다. 다른 선객은 그 여인을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한참 길을 가다 혼자 개울을 건넌 선객이 꾸짖으며 말했다. “수행자가 어찌 여인을 업는단 말이오.” 그러자 여인을 업은 선객은 나직히 대꾸했다. “나는 아까 여인을 등에서 내려 놓았는데 그대는 아직도 업고 있구려.” 시인은, 그리고 당신은 어느 선객의 길을 가고 있는가….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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