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ighting③]실업기간의 「時테크」

  • 입력 1998년 2월 10일 20시 13분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머리맡에서 울리는 자명종을 끄며 김준석씨(가명·33·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눈을 뜬다. 오전7시반.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와 세살배기 아들녀석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침대 맞은편 달력을 확인한다. 수요일. 9시30분까지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전자도서실에 좋은 자리를 잡으려면 서둘러 가야지.’ 두달전만해도 오전 8시면 출근길 러시아워에 갇혀 있을 시간이다. 직함도 재벌그룹 광고기획사의 잘나가는 김대리. 지난해말 부서장으로부터 날아온 ‘최후통첩’. “미안하네 김대리. 팀이 아예 없어질 것 같네.” 실직 후 2주일간은 아침마다 넥타이를 매고 나섰다. 노동사무소와 북한산, 교보문고와 만화방 비디오방을 대책없이 전전하던 나날. 빈 주머니도 힘겨웠지만 더 무서운 것은 ‘넘치는 시간’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내의 다그침에 비로소 사실을 고백한 김씨는 책상앞에 앉아 계획표를 짜기 시작했다. “학생 때는 학교가,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가 내 시간을 모두 관리해줬습니다. 막상 나 혼자 시간을 쓰게 되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러다 폐인이 되겠다 싶어서 스스로를 강제하기로 했습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얻어 들은 것이 계획표를 짜는데 도움이 됐다. 그의 주간계획표와 중장기계획표. ▼월요일〓목욕하는 날. 함께 실직한 입사동기와의 정보교환. 실직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날이 월요일. 실업경력이 오랜 ‘선배’들은 ‘역(逆)월요병’이라고 일러줬다. 일요일엔 다같이 놀았는데 월요일에는 모두 출근하고 나혼자만 갈 곳이 없다는 소외감. 목욕탕의 날로 ‘입퇴사동기’와 지난 한주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정보도 교환. ▼화 수요일〓도서관 가는 날. 취직후 가 본일이 없는 도서관. 참 많이 변했다.신문 잡지 구독은 물론이고 인터넷 영화 비디오 CD감상까지 무료. 한때 ‘중독자’라는 소리를 들었을만큼 빠졌던 인터넷은 이제 전화요금이 겁이 나 함부로 할 수 없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자도서실이나 홍익대앞 마포도서관의 전자정보자료실은 인터넷사용과 전자도서 열람에 좋다. ▼목요일〓마음껏 영화를 본다. 실직 초기 새벽까지 비디오를 보고 아침마다 몽롱한 기분으로 깨어난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대응책으로 1주일에 하루만 영화를 질리도록 보기로 했다. 문제는 돈. 대학 때도 종종 찾았던 영국문화원 프랑스문화원 외에 서초동 예술의 전당 내 국립영상자료원을 비디오감상실로 개척했다. 영화들을 반값에 볼 수 있는 동시상영극장 간판도 놓치지 않고 살핀다. ▼금요일〓등산하는 날. 마지막 남은 자원은 몸. 사람이 많은 주말을 피해 금요일을 등산의 날로 정했다. 목표지점에 올라 지난 한주간의 손익을 결산해본다. ▼토요일〓아들과 놀아주는 날. 부쩍 풀이 죽은 아들과 공원에서 지치도록 뛰어놀고 좋아하는 ‘안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준다. 아내에 대한 간접위로효과도 있다. 김씨의 장기계획은 ‘인터넷정보검색사 자격증’ 획득. 중간목표로 AFKN 1시간씩 청취와 ‘보캐불러리 22000’복습을 잡았다. 인터넷도사가 되는 것은 컴퓨터보다 영어실력이 좌우하기 때문. “속 모르는 사람은 매일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일자리를 구하러 다녀야지 무슨 팔자좋은 소리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일 당장 재취업이 안 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쳐서 제풀에 쓰러져요. 실업자는 스스로 할일을 창조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해야 합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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