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장기자랑대회가 열린다. 방금 전학온,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애 노마. “나도 나가고 싶은데….”
아이들 사회라고 텃세가 없으랴. 기회를 주지 않으니 무대 뒷정리만 맡을 수밖에. 드디어 장기대회날. 노래를 부르기로 한 어린이가 딸꾹질을 멈추지 않는다. 큰일났다. 다들 자기 일에만 골몰해 남의 노래 가사까지 외운 아이가 없다. 언제나, 모든 일에 철저한 노마만 빼고.
떼밀리다시피 무대에 오른 노마. “혼자 있는 외로움이 어떤지 아세요? 당신 마음에 다가가고 싶은데….”
그리고 우레와 같은 박수, 박수. 기회는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온다는 산뜻한 교훈. 애니메이션 ‘양배추인형의 클럽하우스’를 보면 두 가지 점에서 놀란다.
첫째는 못생겨서 더욱 귀여운 양배추인형을 조금씩 움직여 가며 정교하게 찍어냈다는 것(전문용어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그래서 30분 찍는데 2년이나 걸릴 만큼 공을 들였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감동적인 내용 때문이다.
아이들 세계는 어른들의 축소판. 여기에도 세(勢)몰이가 있고 권력의 밀고당김이 있으며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 첨단 테크놀러지와 오래된 덕목간의 갈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무 위에 집을 짓는다고 “여자가 어떻게 집을 짓겠어?” “여자라고 왜 못해?”하면서 남녀 편을 갈라 다투던 아이들이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은 짜릿하리만큼 상쾌하다.
말그대로 ‘초등학교에서 배운대로’ 살아가는 아이들, 꿈을 가지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 통통한 얼굴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학원에나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아니면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이후 학습지에 코를 박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불쌍해질 뿐.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은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작품이다.
영화속 양배추인형을 만든 사람은 80년대 중반 미국에서 양배추인형을 탄생시킨 재비어 로버츠다. 그는 인형을 ‘판다’고 하지 않고 ‘입양시킨다’는 기발한 개념을 만들어내 전세계 어린이들을 매료시켰다.
지난해 동아 LG국제만화페스티벌 공식초청작으로 상영돼 호평을 받은 영화. 동화책과 영화음악CD, 양배추인형 아이들의 노래모음집이 들어있는 비디오테이프를 포함해 2만2천원에 판매된다. ㈜새롬엔터테인먼트 12일 출시. 02―518―3373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