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최초로 발견했다(?).
과연 그런가. 제대로 된 세계사라면 ‘콜럼버스는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신대륙에 발을 디뎠다’라고 쓰여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 입장에선.
역사연구가 김성환씨의 ‘교실밖 세계사여행’(사계절). 그는 ‘교실안 세계사’의 유럽 제일주의, 유럽 중심주의 시각을 거부한다.
저자는 고대부터 중세까지 세계문명의 중심을 유럽에서 찾는 역사인식 자체가 ‘착각’이라고 한다. 유럽보다는 이슬람 지역이나 비잔틴 지역, 나아가 동아시아의 중화(中華)지역이 경제 문화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왜, 유럽에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바스코 다 가마는 잘 알면서 중국의 정허(鄭和)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는가. 그 역시 중국에서 동중국해와 인도양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고 이어 아프리카 동쪽까지 진출했는데 말이다. 당시의 기록은 다 가마 일행이 인도에 가져간 물건은 푸대접을 받았으나 정허가 싣고 간 비단과 도자기는 대환영을 받았다고 전한다. “15세기 국제무역은 이슬람과 인도 중국을 잇는 거대한 벨트를 형성했다.유럽은 이 벨트 바깥의 변방에 위치한 미개지역에 불과했다.”
역사 서술에서 자기 정체성을 강조하는 저자. 그러나 섣부른 주관에 흐르는 것 역시 경계한다.
우리 교과서는 고려조 금속활자로 발간한 고금상정예문이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2백년 앞섰다고 적고 있다. 저자의 반응은 싸늘하다. ‘억지 주장이자 아전인수의 극치’라는 것.
먼저 기술적인 차이. 고금상정예문은 활자판 위에 먹물을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붙인 뒤 문질러 찍어냈다. 목판이 금속활자로 바뀌었을 뿐 대량인쇄가 가능한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역사적 공헌도. 고금상정예문은 단순한 예절교범이었지만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유럽사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결정적인 매개가 됐다.
“역사적 사실을 평가할 때는 기술적인 측면과 함께 역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씩 둘씩 교과서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사계절의 ‘교실밖 시리즈’. 국어 국사 지리 수학 생물에 이어 이번에 나온 세계사여행은 역사해석에 있어 문화사적 관점을 ‘개입’시킨 값진 시도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