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일상(日常), 일상의 부활이다. 그동안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처럼 거창한 것의 그늘에 가려있던 일상생활. 그 일상이 억압에서 벗어나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테마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일상의 사회학’. 일상의 부활만이 세기말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의 발로다.
특히 최근 일상의 사회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들이 나오면서 그 관심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강수택 경상대교수의 ‘일상생활의 패러다임’(민음사)과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의 ‘현대를 생각한다―이미지와 스타일의 시대’(문예출판사). 마페졸리는 장 보드리야르와 함께 프랑스 사회학의 떠오르는 기수. 일상의 사회학이란 말 그대로 평범한 일상을 탐구하고 거기 숨어있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건져내는 작업.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려는 인간주의적 관점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다루는 것일까. 예를 들어 ‘실업자들의 일상에 관한 연구’. 실업률같은 통계에만 매달렸던 기존 연구의 허점을 짚어냄으로써 실업자의 내면세계 등 실업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정확한 진단 없이 올바른 대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일상에 대한 관심은 70년대에 이미 시작됐다. 에드문트 후설이 ‘생활의 소박성’을 철학의 과제로 천명한 이후 앙리 르페브르, 피터 버거, 위르겐 하버마스 등 많은 지성들이 일상에 매달렸다.
일상의 사회학은 엘리트주의에 빠진 기존 학문방법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기존 학문이라는 것이 학자들만의 지식놀음이었다는 비판이다. 소외됐던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일상의 사회학은 그래서 근대성(이성·理性)과 권위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한다. 일상연구는 ‘삶의 모습 전체’를 다루기 때문에 한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학 철학 역사학 심리학 정치학에서도 활발히 전개됐고 나아가 종교 등 일상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상의 사회학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사회학자들은 경제성장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인간성과 일상을 회복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수택교수는 “일상의 사회학을 통해 국가가 아닌 인간중심의 새로운 사회틀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페졸리의 일상사회학은 독특하다. 그에게 중요한 개념은 이미지와 스타일. 한 사회(국가보다 작은 부족 정도의 공동체)에는 구성원이 공감하는 무의식적 스타일이 있다. 이 하나의 스타일은 다양한 이미지로 구성된 연대의식이다. 특히 현대의 삶은 미(美)에 좌우되기 때문에 이미지스타일은 다분히 미학적인 것이 된다. 인간의 다양한 일상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 스타일(무의식적 연대의식)을 찾아내 새로운 공동체를 구현하자는 것이 마페졸리의 생각이다.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