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리의 소설은 한국사회에서 왜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혹 소설 그 자체와는 관계없이 결손가정출신에 학교에서는 ‘조센진열등생’이라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하고 채 스무살도 안된 나이에 이미 상습 자살기도자로 방황했던 불우한 재일동포처녀가 아쿠타가와(芥川)상을 거머쥐었다는 ‘성공사례’에 동포애적 지지를 보내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유미리의 새 번역소설 ‘타일’(민음사)을 읽을 때부터는 보다 냉정한 시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흠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섬뜩하게 포착해내는 그의 솜씨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다.
발기불능이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이혼당한 사내. 북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있지만 사내는 이혼 이후 타인과의 최소한의 소통도 거부한채 원룸에 틀어박힌다. 사내의 유일한 일거리는 원룸의 내부공간을 온통 타일로 바르는 것.
원룸아파트의 소유주는 ‘관음증’의 노인. 사내가 규정을 어기고 집 내부를 고쳤다는 것을 빌미로 말문을 튼 노인은 ‘재미있는 일을 기획하라’고 요구한다.
사내의 기획은 자신이 애독하는 주간지 연재소설의 여성작가와 만나는 것. “섹스를 하고싶나”라는 노인의 질문에 “아뇨. 그냥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던 사내는 그러나 노인이 보는 앞에서 여성작가를 살해한다. 타일이 완성되고 나면 그 뒤를 이을 이야기가 없었던 사내. 연재소설이 발기불능의 자신을 모델로 쓰여지고 있다고 믿었던 그는 작가에게 결말부분의 스토리를 강요하고 작가가 ‘쓸 수 없다’고 버티자 스스로 결말을 만들고 만다. 한편의 잔혹극같은 소설을 통해 유미리는 소통불능의 현대사회와 그속에 갇힌 존재의 일그러짐을 가차없이 그려낸다. 그의 단정적인 문장들은 때로 ‘세상의 종말’을 본 사람의 독백처럼 황폐하다.
‘쓰고 싶은 것,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뭐가 있다면 작가가 되기 전에 자살하겠죠.’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