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맞는 남편? ‘엄살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센데…’ 웃고 넘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의 물결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한숨짓는 남성이 우리 주변엔 적지 않다. 특히 남성들을 위축시키는 IMF한파, 빡빡해진 가정…. 매맞는 남편들의 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매맞는 남편은 누구인가
명문대출신 대기업 사원 김모씨(32). 동거하다 결혼한 한살 연하의 아내. 결혼3개월 즈음부터 꼬집고 할퀴더니 스스로 분에 못이긴듯 집기를 마구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주먹다짐 한번 벌여본 적 없는 온순한 김씨. ‘저러다 말겠지’라며 참았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아내의 폭행. 김씨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 형 집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최근 이혼을 요구했지만 ‘위자료 5천만원을 달라’는 아내의 맞요구. 남성들의 고민을 상담 해주는 ‘남성의 전화’. 하루 30여통의 상담전화 중엔 김씨와 비슷한 곤경에 처한 남성들의 하소연이 적지 않다.
여기서 의문 한가지. ‘남자가 최소한 방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맞고만 있을까.’
남성의전화 이옥소장(48·여). “상담하러 찾아온 남성들을 보면 체구가 왜소하며 매우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 대부분이다. 반면(피해 남편들의 설명에 따르면) 부인은 체격이 크고 괄괄한 성격이 많다.”
백상창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 “매맞는 남편은 어렸을 적 부모가 유난히 엄해 기죽어 자란 경우가 많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보단 의기소침해 순응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그런 불성실함은 거의 찾기 힘들다. 반면 남편을 때리는 여성은 부모가 딸을 낳았다고 노골적으로 실망한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여성이라는데 불만을 가져왔고 남성에 대한 경쟁의식이 매우 강하다.”
그래도 남는 ‘아무리 체구가 작아도 힘에서 밀릴까’라는 의문. 서모씨(43)의 경우가 답이 될까. 2년전부터 꼬집는 수준의 경미한 폭행을 해온 아내. 지난달 중순 갑자기 서씨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눈에 불이 번쩍하는 순간 또다시 치켜올려진 아내의 손. 본능적으로 방어차원에서 어깨를 잡고 밀었더니 벽에 부딪힌 아내는 거품을 물고 혼절. 응급차가 오고 동네망신. 결국 서씨는 일체의 대응을 포기한 채 맞고 지낸다.
◇피해정도
폭력남편에게 당한 아내의 경우처럼 과격하게 맞는 사례는 드물다. 할퀴고 꼬집고, 따귀 또는 던진 집기에 맞는 수준이 대부분. 하지만 다리미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은 사례도 남성의 전화에 몇 건 접수돼 있다.
심신의 피해가 극심한 남성들은 결국 이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빈약한 법률상식, 위자료 문제, 이혼이라는 절차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냥 돌아가는 남성이 많다”고 이소장은 전한다.
지난주 남성의전화를 찾은 대기업 사원 박모씨(33). 연애결혼한 아내에게 장모와 친부모 앞에서까지 따귀를 맞고 이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아내가 요구하는 3천만원의 위자료에 난감해 방황하는 상태.
◇주변의 냉소
매맞는 남편들은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2년전 퇴직한 윤모씨(54). 퇴직금으로 사업을 해보려다 실패, 아내가 가게를 차려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던 업보인지 아내와 자녀 모두 드러내놓고 윤씨를 무시한다. 심지어 식사도 자기네들끼리만 하고 가게에 나가면서 일부러 반찬을 치워버린다. 그러던 어느날 밤늦게 돌아온 아내. 자고 있는 윤씨를 발로 마구 걷어차며 “나가 죽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자녀들은 태연히 거실에서 TV를 보고. 반복되는 폭행에 참다못해 파출소로 달려갔다. “집안일이니까 우선 대화로 풀어보세요”라고 권유하는 당직경관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하지만 그 옆에 앉아있던 경관들이 애써 웃음을 참고 있는 걸 보고 윤씨는 힘없이 돌아섰다.
〈이기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