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불패2’ ‘이연걸의 태극권’ ‘중경삼림’ ‘첨밀밀’ ‘변검’…. 공통점은 홍콩영화다. 또하나의 공통점은 영화사 모인그룹이 수입했다는 것.
모인그룹 정태진사장은 리롄지에(李連杰) 린칭샤 왕자웨이(王家衛) 등 홍콩 영화인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90년부터 홍콩영화 전문 수입사로 자처하고 있는 보기드문 회사다.
모인그룹이 21일 개봉한 ‘첫사랑’은 정사장과 왕자웨이가 함께 제작한 영화.
그래서 수입사는 ‘왕자웨이 작품’이라고 간판을 내붙였다. 그만큼 왕자웨이의 상품성을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왕자웨이가 추천한 코미디언출신 거민후이(葛民輝) 감독의 이 영화는 ‘왕자웨이 문하생’이 만들었다 싶을만큼 왕자웨이 냄새가 물씬 풍긴다.
CF를 연상케하는 현란하고도 역동적 화면,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의사불통(意思不通).
‘왕자웨이 영상언어’라 할 만한 스텝프린트(인물들의 느린 동작이 딱딱 끊어진 느낌을 주는 기법)와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기가 여지없이 나타난다.
반면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슴아린 사연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두 토막으로 이뤄진 이 영화에서는 몽유병에 걸린 여자 리웨이웨이(李維維)와 청소부 진청우(金城武)의 그야말로 몽유병같은 만남이 나오고, ‘사랑 공포증’때문에 도망간 거민후이와 10년째 그 남자를 찾아헤맨 여자 모원웨이의 악몽같은 재회가 ‘코미디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왕자웨이는 이 영화를 ‘랩무비’라고 이름붙였다.
영화에서 주인공 남녀의 사랑보다 강조된 것은 왕자웨이와 거민후이의 만남이다.
영화 뒤의 영화, 메이킹 필름처럼 거민후이는 당당히 스크린 속에 얼굴을 내밀고 왕자웨이가 자신을 얼마나 괴롭혔는지를 관객에게 말한다.
영화가 끝나면 또다시 등장해 “영화도 삶”이라며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영화라는 매체와 첫사랑에 빠진뒤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고백하는 듯하다.
거민후이를 발탁한 왕자웨이는 다음 작품에서 우리나라의 신진 송일권에게 연출을 맡겨 ‘왕자웨이 사단’을 이룰 예정이다.
송일권은 지난해 삼성단편영화제에 출품했던 감독으로 역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왕자웨이를 사로잡았다.
다음 작품은 미스터리 성격을 띠게 될 예정.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