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한동안 젊은 작가들에게 글마당을 다 내준 듯 침묵으로 일관하던 작가들조차 오랜만에 기지개를 켠다.
작가 이청준(59)은 예술가소설인 중편‘날개의 집’으로 21세기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 등단 34년째인 이청준은 ‘날개의 집’ 이후에도 ‘목수의 집’(‘문학과 사회’ 97년 겨울)을 써서 ‘소설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성찰의 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95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이후 한동안 휴지기를 가졌던 박완서(67)는 지난 겨울 중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문학동네’)을 발표한 데 이어 봄에는 단편 ‘꽃잎 속의 가시’(‘작가세계’)를 선보였다. 그는 ‘너무도…’에서는 초로(初老)부부의 메마른 섹스를 통해 ‘인간관계로서의 부부’를 그윽한 시선으로 조망했고 ‘꽃잎…’에서는 미국이민 1세대 노인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함의를 드러내 보였다. 박태순(56)의 복귀도 반가운 소식.
6월항쟁을 다룬 ‘밤길의 사람들’(88년)이래 소설쓰기를 사실상 중단했던 그는 ‘실천문학’봄호에 장편 ‘님의 그림자’연재를 시작함으로써 10년만에 귀향했다.
“동시대를 어떻게 읽어내야할지 당황스러워 소설을 쓸 수 없었다”는 그는 “이제는 내 나이 또래 작가들이 할 수 있는 일,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국사회가 겪어온 통과의례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해석해내는 소설을 써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주영(59)의 장편소설 ‘홍어’와 이윤기(51)의 창작집 ‘나비넥타이’는 ‘오랜만에 소설미학의 모범을 선보인 작품’이라는 호평을 얻고 있다. 10년만에 창작집 ‘무서운 세상’을 펴낸 유순하(55)는 50대 가장들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가식없는 또래의 어법으로 충실히 증언하고 있다.
중견들의 활발한 창작은 후배작가들에게도 활력이 된다. “단어 하나 고르는데도 오래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선배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경건한 창작태도에 새삼스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후배들은 입을 모은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자신의 얘기에 몰두해 있는 것과 달리 ‘소설이란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고전적인 작법에 충실한 점도 중견작가들의 작품이 주는 각별한 의미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우리문학이 지금처럼 고른 작가층을 가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광수 김동리 이후 줄곧 작가들이 조로해왔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20대부터 60대까지 같이 활동하며 서로 다른 관심사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쳐보인다는 설명이다.
특히 올해는 ‘황석영의 집필재개’가 중견문학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작가들은 “옥중의 황석영이 석방되면 작품에만 몰두하겠다고 한만큼 산문미학의 고전적 모범을 보여주는 작품을 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