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각 언론사에는 여러 예술문화단체가 보내온 성명서가 팩시밀리를 통해 쏟아졌다. 문화체육부 간부들의 전화도 잇달아 걸려왔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박물관 관리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할 때가 아니다’ ‘광화문에서 과천 청사로 이전해서 어쩌자는 거냐’ ‘국립극장 등을 민영화해서는 곤란하다’….
상당수는 새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드러내놓고 적대감을 표시했다. 어떤 정책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섬뜩한 것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그 논조였다. 그것은 유신과 뒤이은 군사독재하에 걸핏하면 쏟아져 나왔던 무슨 무슨 지지 성명을 연상시켰다. 한마디로 ‘시대착오’였다.
문화체육부 관계자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산하단체에 ‘지시’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말 그런가.
구태의연한 공무원 사회의 모습은 대통령 취임을 하루앞둔 24일에도 이어졌다. 임박한 장관인선에 대해 수소문하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일을 못했다.
과연 할 일이 그 뿐인가 생각해본다.
새정부의 문화정책은 선거공약과 1백대 과제를 통해 드러났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원칙을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공무원 사회는 마땅히 거기에 알맹이를 채워넣는 일을 해야 한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이후 25일 취임까지 문화체육부 공무원들은 정부조직개편에 관한 귀동냥과 로비에 시간을 다보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문화정책 근간을 만들었던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같은 인물이 아쉽다고 한다. 그렇지만 프랑스 문화정책은 앙드레 말로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그의 의지를 공감하고 의욕적으로 일을 해낸 공무원 조직, 역사와 문화를 위해 소리(小利)를 접어둔 문화예술단체와 관변조직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진실로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를 만들고자 헌신하는 공무원, 직급이야 낮건말건 알찬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과 소신에 찬 그런 진정한 ‘문화’공무원이 그립다.
〈조헌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