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뒤엔 이곳에 가보자 ⑥]갯바람내음 석모도

  • 입력 1998년 2월 26일 19시 42분


“타.”

아직도 화가 안 풀렸군. 조수석에 오르는 이경미씨(33·경기 고양시 일산구 강선마을)는 남편의 볼멘소리에 입을 삐죽 내민다.

오늘은 증권사에 다니는 남편 김주환씨(33)의 격주휴무 토요일. 어젯밤 늦게 돌아온 남편의 느닷없는 명령.

“내일 상욱이 처형댁에 좀 맡겨. 나랑 갈 데가 있어.”

갑자기 어디? 혹시 법원? 설마…. 그래 좋다. 나도 겁 안난다. 내가 뭘 잘못했어. 감봉에 감원설에 당신 혼자 스트레스 받는 거 안쓰러워서 국문과 나온 내가 아이들 글짓기교사라도 하겠다는데 왜 다짜고짜 소리는 지르는거야.

아내 경미씨가 이번 냉전의 발단이 됐던 며칠전의 말다툼을 떠올리는 사이 차는 왕복8차로의 김포대교를 넘어선다. 언뜻 이정표를 보니 국도 48번도로, 직진방향 강화.

강화도? 아….

어느해던가 우리가 캠퍼스커플로 빛나던 시절 남편이 “봄바다를 보러 가자”며 내손을 잡아끌었지. 그때는 강화도 들어가는 길이 좁기만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새 다리까지 놓였구나.

강화대교를 건너 잠시 머뭇거리던 남편이 교통경찰에게 석모도 가는 배를 타려는데 외포리항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는다. 석모도? 강화도가 종착지가 아니었구나. 외포리 선착장은 작은 간이역 같다. 차는 두고 가는 줄 알았는데 남편은 어느새 차까지 배에 싣는다.

객실 바깥에 나와 서서 심호흡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덤비는 갈매기떼가 눈앞을 하얗게 메운다.

‘항해’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석모도에 내리자 남편은 보문사라고 쓰인 표지를 따라 좌회전한다. 섬으로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논밭 풍경. 장난감왕국 같은 초등학교의 모습. 말없이 달리던 남편은 듣고 온 얘기가 있는지 ‘민머루 해수욕장’이라는 표지판 앞에서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겨우 차 한대가 다닐 수 있는 길이 금세 가팔라진다.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경미씨는 ‘아’하고 탄성을 지른다.

섬 사이에 호수처럼 갇힌 바다. 운무가 아련히 깔린 봄바다가 포근한 꿈속 같다. 남편은 확 트인 공터에 잠시 차를 세웠다. 기분좋은 바람에 몸을 맡기는데 문득 따스해지는 느낌. 남편이 가만히 등을 안았다. “이 길 끝까지 가보자.”

길끝은 민가 네댓채가 옹기종기 모인 작은 어촌. 바다를 보며 서 있는 도시냄새 나는 이름의 카페보다 그물 깁는 할아버지의 손이 더 정겹다. 뻘에 묻힌 낡은 배들. 미경씨는 문득 서글퍼진다. ‘살기에 바빠 드라이브 한번도 미룬 채 나이 먹어온 우리처럼 저 배도 지친걸까’. 남편 마음도 그랬나. 느닷없이 “할아버지, 저 배 움직이나요”한다.

“에이 여보슈, 멀쩡한 배를…. 지금 물때가 아니라 그렇지.”

그래, 배가 쉬는 시간도 있고 뜨는 시간도 있지. 청춘이 아니라고 우리가 아름답지 않을까.둘이 손잡고 오래 바라본 봄바다. 갯바람이 조금도 차갑지 않았다.

〈정은령기자〉

◇ 알고 갑시다

▼둘러볼 만한 곳

△석모나루 젓갈장〓강화 앞바다의 특산물은 단연 밴댕이 새우 조개젓. 밴댕이는 2.6㎏에 1만3천원.새우는 2.6㎏에 상품 1만5천원, 중품 1만원. 조개젓은 2.6㎏에 1만2천원선. 강화도 밭에서 나는 속이 파란 서리태(팥 비슷하게 생긴 곡류)와 팥, 집에서 띄운 메주도 살 수 있다.

△보문사〓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고찰(古刹)로 조선 순조 때 중건. 1백여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강화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고쳐 짓는 중이라 소란한 것이 흠.

△토담마을〓보문사에서 0.5㎞ 정도 떨어져 있는 카페. 커피 3천원, 대추차 4천원, 산채비빔밥 된장찌개 6천원. 숙박은 2인용 객실이 3만원. 032―932―1020

△민머루통나무집〓민머루해수욕장 드라이브 코스의 레스토랑. 전망이 좋다. 숙박가능. 2인용 객실 3만원. 032―933―9410

▼맛볼 거리

△왕새우소금구이〓제철은 가을이지만 왕새우양어장이 있어 겨울에도 소금구이새우를 맛볼 수 있다. 곳곳의 민박집과 레스토랑에서 파는 새우는 요즘 1㎏에 3만원. 어른 세사람이 모자란듯 먹을 수 있는 분량.

△밴댕이회〓밴댕이는 강화 특산. 제철은 6,7월이라 지금 식당에 나온 것은 토산물이 아닌데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2인분 1만5천원.

▼석모도로 가려면〓일산에서 새로 난 김포대교를 건너 48번 국도로 직진. 강화도에 들어서면 곧장 301번 지방도로를 찾아 전등사 가는 길로 좌회전. 찬우물 삼거리를 만나 우회전한 뒤 직진하면 외포리항. 일산 강선마을에서 외포리까지는 90㎞. 막히지 않으면 50분 남짓.

외포리항에서 석모도까지는 배로 10분. 매시간 정시운행 원칙이지만 승선자만 모이면 수시로 운행. 첫배는 오전 7시30분 마지막 배는 오후 7시. 배삯은 어른 1천2백원, 어린이6백원, 승용차 승선료 1만4천원(왕복).

▼드라이브 코스〓석모나루 삼거리에서 보문사쪽으로 좌회전해 민머루해수욕장 표지를 만나면 다시 좌회전. 길 양쪽으로 펼쳐진 염전에서는 일조량이 늘어나는 3월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민머루로 꺾어들지 않고 보문사로 직진해도 경관이 좋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