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끊긴 자리(言語道斷), 문자로 전할 수 없는(不立文字) 선(禪)의 경지. 그 범접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속(俗)’의 들여다봄. 또는 ‘열리지 않는 문 두드리기’.
30년 문학인생을 통해 숱한 작품 속에서 한맺힌 사람들의 애잔한 삶을 따스하게 일궈온 작가. 그가 새삼스레 산중에 묻혀 사는 선사(禪師)에게서 가르침을 구함은 왜일까. 세간에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피붙이를 출가(出家)시키는 바로 그 마음인가.
이 책은 부처에서부터 ‘걸어다니는 수미산’ 덕암스님에 이르기까지 ‘대각(大覺)’의 큰 줄기를 훑으며 불교의 역사를 아우른다. 하지만 정작 관심은 전국 수많은 사찰에서 산경(山景)에 취해 있는 스님들의 족적과 일화를 캐는데 모아진다. 불문(佛門)에 들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취재하듯’.
그래서 이 책은 조금은 ‘속(俗)되다’. 그리고 조금은 ‘헛되다’. 기이한 행적과 좌선 정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에서 대체 무엇을 보려 함인가. 득도한 선사가 벗어던진 ‘허물’을 부여잡고 대체 무엇을 깨우치려 함인가. 차라리 ‘풍진(風塵)’에 푹 절고 닳아짐만 못할지니.
외려, 견성대오(見性大悟) 직전 청담스님이 남긴 말씀이 더욱 가슴을 친다.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산…. 이렇게 정처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면서 운수 행각을 한 지도 어언 수십 년이 지났건만, 내가 그토록 뼈에 사무친 깨달음의 본처는 찾으면 찾을수록 아득하고 좇으면 좇을수록 어둡기만 하구나….’
그리고 책속의 일화 한토막.
누군가가 성철스님을 찾아갔다. 상좌가 거연히 말했다. “누구든 스님을 만나려면 삼천 배를 올려야 합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절을 하고 또 했다. 말이 삼천 배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힘이 들어 절을 하다 쉬고 또 쉬고 했다. 마지막으로 삼천을 헤아렸을 때는 뉘엿뉘엿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마침내 상좌가 그를 안내하려고 하자 그는 스님이 있는 방을 뒤로 하고 그냥 산에서 내려와버렸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다.
“성철스님은 삼천 배 저쪽의 달(月)일 뿐이었어. 허상이란 말이지! 자기의 이야기만 하는 그 스님에게서 어찌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문학동네 펴냄.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