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형 화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미술품대중화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정상적인 미술시장의 흐름을 왜곡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대형 화랑들의 이같은 시도는 국제통화기금(IMF)한파라는 외부적 압력이 계기가 됐다. 끝없는 미술시장의 불황속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보고 이를 통해 미술인구의 저변을 확대해보자는 것이다. 국제화랑 갤러리현대 동숭갤러리 등이 이같은 취지로 전시회를 열었다.
갤러리 현대는 2∼22일 ‘호당 가격없는 작품전’을 연다. 예술품가격을 작품 크기로 매겨온 우스꽝스러운 관행을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이대원 김흥수 서세옥 등 원로 중견작가 1백여명의 작품.
3호 크기인 이대원의 ‘농원’은 호당가(호당 3백만원)로 따져 9백만원이나 이번 전시회에서 7백만원으로 매겨졌다. 다른 작가들의 출품작도 대부분 10%이상 가격이 떨어졌다.
동숭갤러리는 6∼11일 ‘유명작가 그림 파격 경매전’을 연다. 이중섭 장욱진 김환기 서세옥 등 작고작가와 화단의 인기작가 작품 2백50여점. 시가 1억원인 장욱진의 ‘풍경’(3호)은 4천5백만원으로 출발가격이 정해졌다. 동숭갤러리측은 지난달에도 조각품 할인경매를 실시, 출품작 1백60여점 대부분이 팔렸다고 밝혔다.
대형 화랑들은 이같은 움직임이 거품빼기로 미술품의 대중화를 기할 수 있고 국제시장 진출에도 상당한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크기가 아니라 작품성으로 값을 책정하며 경매의 활성화로 시장원리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는다. 미술계에서도 이같은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적 눈길도 많다. 이는 불황기 때마다 반복돼온 미봉책으로 몇몇 대형화랑만 반짝 이득을 본 채 미술계의 근본적 체질변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최근 화랑협회장에서 사퇴한 노화랑의 노승진사장은 “호당가격제 철폐나 경매제의 정착은 미술계의 숙원이지만 몇몇 화랑의 일방적 움직임으로는 정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중소화랑대표는 “큰 화랑의 움직임 때문에 작은 화랑들의 살길이 날로 좁아지고 이는 젊고 참신한 작가의 육성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매제도의 확립을 미술계의 체질을 강화하고 잘못된 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림값을 시장기능에 맡기면 호당가격제의 폐해나 가격의 거품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