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으로 빚청산 『서러운 空手去』…실직자들 피눈물

  • 입력 1998년 3월 4일 20시 20분


젊음을 모두 바친 직장. 살벌한 ‘칼바람’에 베이는 것도 참담한데 ‘빈손’으로 쫓겨난다.

‘여생(餘生)보증금’인 퇴직금을 재직 당시 회사에서 빌렸던 주택융자금 등 각종 대출금을 갚는데 모두 쓰고 떠나는 ‘빈손 실직자’가 늘고 있다.

15년 동안 근무했던 의류업체에서 지난해 말 정리해고당한 박모씨(39·강남구 대치동)는 퇴직금과 퇴직가산금 등으로 8천여만원을 받았지만 빚청산에 다써버렸다.

박씨는 91년 대치동에 30평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회사로부터 연리 4%로 주택융자금 5천만원을 빌렸고 은행에서 2천만원, 종금사에서 3천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박씨가 퇴사하자 회사측은 대출금 5천만원을 즉시 상환할 것을 요구했고 은행도 박씨의 신분에 변화가 생겼다는 이유로 대출금 2천만원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박씨는 할수없이 퇴직금중 7천만원을 떼어 융자금을 갚았고 최근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마저 종금사빚을 청산하기 위해 내놨다. 퇴직후 김밥체인점을 차리려던 박씨의 꿈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실직자들이 겪는 첫번째 어려움은 신분 변화에 따른 대출금의 조기 상환 압력. 한일은행 대출계 정모과장(42)은 “직장을 믿고 담보도 없이 대출을 해줬는데 직장을 그만뒀으니 대출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은행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동아생명㈜을 비롯한 일부 회사는 실직자들에게 퇴직후 1년간 재직시와 똑같은 대출 금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일부 실직자들은 대출금 상환을 연기하기 위해 퇴직후에도 서류상으로나마 ‘무급 휴직’상태로 남겨줄 것을 애원하기도 한다.

실직자 심모씨(47·강동구 천호동)는 “실업자들이 재기할 수 있는 최소기간만이라도 금융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훈·이헌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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