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녹색평론선집」,자연에 순응하는 삶 제시

  • 입력 1998년 3월 13일 10시 26분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신성한 것들이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게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가닥에 불과하다….”

놀라운 일이다.

한세기도 훨씬 전에 미국 서부의 한 인디언 추장이 남긴 연설. 일찍이 오늘의 문명세계에 이토록 깊은 울림과 감동을 던져 준 메시지가 있었던가.

자연에 근거한 소박한 언어와 이미지 속에서 존재의 신비, 인간의 삶터와 창조주와의 관계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을 생생한 호소력으로 전한다.

‘녹색평론선집’(녹색평론사 펴냄)에 실린 이 연설은 두아미쉬―수쿠아미쉬족(族)의 추장 시애틀이 1854년, 인디언 부족의 땅을 팔라는 미국 정부의 제안에 대해 답한 것.

격월간 ‘녹색평론’. 참으로 특이한 잡지다. 91년 김종철교수(영남대)는 창간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쇄물 공해 시대에 또 하나의 공해를 추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 작업이 불가피하게 ‘산림 파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봤을 때, 이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든지 간에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기술문명이 초래한 이 엄청난 생태학적 재난 앞에서 우리의 삶이 통째로 ‘묵시록적 상황’에 직면해 있는 이 때. 우리 자신은 그렇다치고 우리의 아이들이 다시 자기 아이들을 갖게 되었을 때 과연 망설임은 없을까, 라는데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이 때. 녹색평론은 나와야만 했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삶의 우주적 연관이나 자연적 근거를 완전히 망각한 현재의 산업문명은 매우 낯선 것이다. 사람의 에너지를 온통 소득과 소비의 경쟁 속에 쏟아붓도록 강요하는 오늘의 지배적인 문화 역시 인류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생존 방식.

이 낯선 삶, 이 예외적인 생존 방식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엄청난 생명파괴와 비인간화의 일상화. 단 한시도 생명에 대한 부당한 폭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야만의 무덤. 일찍이 간디가 ‘언젠가는 인류 모두에게 가장 큰 저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던 서구 산업주의의 시대.

선집은 잡지에 발표됐던 여러 글들을 모았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신부인 이반 일리치는 ‘간디의 오두막’이란 글에서 이런 말을 들려준다.

“우리가 평생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물품들이 우리에게 내면적인 힘을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물건들은 ‘목발’과 같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더 그에 의존하게 된다.역설적인 사실은 많이 가진 사람들이 우월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월한 존재로 간주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

미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인 제리 맨더. 그는 산업문명의 신기술이 지구와 사회관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리 자신과 자연에 대한 개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논의 없이 막바로 일상에 틈입(闖入)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자동차의 존재에 대해 미리 논의가 있었다면 우리는 땅을 온통 포장해버리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걸프전쟁은 1백년 전에 자동차를 선택한데서 나온 결과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햇빛이 안드는 응달에서 물만 주면서 키우는 ‘콩나물’이 아니라, 땅에 심어 스스로 크는 ‘콩나무’를 교육하는 풀무농업학교도 소개된다.

‘무두무미(無頭無尾)’의 정신에 따라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이 학교는 공동체 구성원간에 철저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진다. 루소나 페스탈로치가 역설했던 ‘열린 교육’ 방식으로 ‘위대한 평민’을 길러내는 게 그 교육목표.

마지막으로 미국의 저명한 시인 웬델 베리가 컴퓨터를 사지않고 타자기를 고집하는 이유.

“새로운 연장은 먼저 것보다 값이 싸야 한다. 그것은 적어도 먼저 것보다 크기가 작아야 한다. 그것은 먼저 것보다 분명히 그리고 현저하게 나은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먼저 것보다 에너지를 적게 써야 한다. 그것은 연장만 있으면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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