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따뜻한 사람들]마흔 넘어 깨달은「어머니 사랑」

  • 입력 1998년 3월 18일 08시 00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외로울 때면 술 커피 수다떨기 등 여러 방법으로 풀어보려 한다. 하지만 자식 문제로 마음이 상할 때는 어김없이 친정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엄마 나야, 잘 있었어”로 시작되는 딸자식의 하소연을 잘도 들어 주신다. 편안할 때는 잊고 살다가도 살기 힘들고 외로울 때면 엄마를 찾는 이기적인 딸. 그 딸도 어느새 마흔 고개를 훌쩍 넘었다.

토요일 오후. 모처럼 딸아이와 참고서를 사러 시내 서점에 나갔다. 고등학교 신입생이라 이달 내내 수업료와 교복비 등으로 목돈이 들어가 힘이 들었지만, 나란히 팔짱을 끼고 걸으니 어느새 이렇게 자랐나 싶어 마음이 설레었다.

참고서를 사자 딸은 새 구두를 사 달라고 졸랐다. 중학교 때 신던 신발이 아직 신을만 한데 이것 저것 트집을 잡아가며 새것을 요구하는 딸에게 IMF를 늘어 놓았으나 흐지부지 마음이 약해져 구두점을 찾았다. 그런데 신발을 고르다 딸과 작은 말다툼이 시작됐다.

걷기에 편하고 굽도 낮은 단순한 신발을 원하는 엄마와 개성이 강하고 굽이 약간 높은 세련된 구두를 고집하는 딸. 그 사이에 갑자기 딸이 “엄마는 이제 촌스러워서 같이 못다니겠다”면서 휑하니 문을 열고 나가 버리는게 아닌가. 주변 사람들과 점원들에게 민망하기도 하고 딸자식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아 왜 그리 속상하고 눈물이 나는지. 18년 동안 개성과 세련미는 모두 접고 오로지 가족 뒷바라지에 정성을 쏟았는데….

결국 구두는 사지 못하고 속상해 하던 중 문득 여고시절 학부모 회의가 있던 날 친정 엄마의 모습이 스쳤다. 엄마는 그때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오셨다. 다른 친구 엄마들은 세련된 양장을 하셨는데 유독 우리 엄마만 한복을 입고 오신 게 창피해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촌스러운 한복을 입고서는 자꾸 나의 고집불통 성격을 상담하시는게 아닌가.

집에 와서 괜히 신경질을 부리고 투덜거렸던 바로 그 모습을 딸자식을 통해 되새겨 보다니…. “엄마, 죄송해요. 그땐 사랑하는 엄마가 더욱더 돋보였으면 하는 사춘기의 애정표현이었어요.” 마흔이 넘어 비로소 철이 드는가 보다.

김진명(전북 전주시 호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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