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백건우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집 CD」

  • 입력 1998년 3월 21일 09시 59분


87년 3월1일 모스크바 모스필름 스튜디오. 건반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훑던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고개를 흔들며 혼자말을 했다.

“해머가 딱딱한데. 한번도 손이 닿지 않은 새 피아노같군….”

며칠뒤 스튜디오의 청취실에서 근심은 더 늘었다. 귀퉁이가 움푹 들어간 모니터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거칠었다. “제대로 녹음된 걸까.”

그 속앓이의 결실이 직경 12㎝의 CD에 담겨나왔다. RCA가 내놓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1,2번(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지휘 모스크바 방송관현악단 협연).

레코딩의 마술이란 이런 것일까. 관현악의 질감과 악기 사이의 균형은 녹음 현장의 실제음보다 더 섬세하게 표현됐다. 피아노의 터치는 차게 빛나며 오히려 남다른 매력을 전해온다.

백건우는 “러시아인의 분위기와 슬픔까지 연주속에 담기 위해 러시아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 시도는 성공을 거뒀다.

두터운 금관과 현의 장려함은 서두부터 ‘크렘린의 종(鐘)’으로 표현된 2번 협주곡의 낮은 채도(彩度)에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허식과 과장을 배제한 백건우의 담담한 연주는 작품에 숨은 호흡을 낱낱이 밝혀낸다. 감추어진 음표는 없다. 세부까지 투명하게 드러나면서 선율의 굴곡이 더없이 유기적으로 처리돼 있다.

프랑스의 음반평론지 디아파종 3월호는 음반 소개와 함께 2페이지에 걸쳐 백건우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보기드문 개성을 가진 예술가며 건반의 타이탄(titan·신화속의 거인)이다.” 디아파종의 표현이다. 02―3420―0125∼7(BMG)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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