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A호텔 508호. 국내 유수의 건설업체 부산주재원인 신과장은 문을 열기가 무섭게 쇼핑백에서 팬티를 꺼내 어제 서울에서 출장온 백이사에게 내밀었다. 그때 최차장이 빈손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정장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던 백이사가 신과장이 내미는 팬티를 보며 파안대소하자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간밤에 팬티가 없어졌으니 당장 구해오라고 새벽잠까지 깨우며 법석을 떤 분이 이제와서 딴청이니 기가 막힐 수밖에.
신과장은 오전 6시경 백이사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호텔방을 샅샅이 뒤져도 팬티가 없다며 아주 당황한 목소리였다. 황당하긴 신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신과장은 재빨리 오늘 오전에 예정된 부산지역 항만건설 사업계획 브리핑을 떠올렸다.
치밀하기로 이름난 백이사가 과연 노팬티 바지차림으로 사장과 고위공무원 은행책임자 등 여러 사람 앞에서 자연스럽게 브리핑을 할 수 있을까. 신과장은 백이사의 성격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팬티 중에서 제일 세련된 것을 골라 호텔로 직행했다. 새벽 일찍 문을 연 속옷점포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신과장과 달리 최차장은 백이사의 전화를 받은 뒤 문이 잠긴 속옷점포를 두드리고 다녔다. 결과는 시간낭비에 헛고생뿐. 완벽주의자인 백이사는 두 사람에게 같은 일을 부탁했던 것이다.
“팬티 고녀석이 말이야, 바짓가랑이 속에 숨어 있더라고. 하하, 미안하네.”
최차장의 수직적이고 고정적인 사고와 신과장의 수평적 창조적 사고. 과연 두가지 사고방식 중 어느 것이 오늘의 IMF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는데 도움이 될까.
김원규(퍼스널석세스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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