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마치 한판의 체스와도 같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기회는 한번 지나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리라. 저 먼 유럽 변경의 나라 스페인 시골 출신의 화가 고야에게는 그 말이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독한 출세주의자에 이기주의자였으며 자신에게 찾아든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교활하고 비굴한 짓도 서슴치 않았다. 궁정과 상류사회로 진출하기 위해서 정략결혼이나 때로 선배 작가들의 필치를 일부분 표절하기까지 했다. 한평생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도무지 체념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다 갔다. 게다가 훗날 귀까지 들리지 않게 되었으니 타인의 충고나 호통에도 태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야에 관해 말할 때 겨우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 삶과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과 정열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평전(評傳)이란 비평을 곁들인 전기다. ‘고야’의 작가 홋타 요시에는 10년 동안 스페인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 거주하면서 서양의 사상이나 문화사를 폭넓게 탐구하였다. 그 때문인지 무려 네권이나 되는 ‘무거운’ 고야의 평전을 읽고 나면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스페인을 비롯한 중남미와 유럽 여러 나라에 대한 문화와 역사까지도 투시할 수 있다. ‘고야’ 속에서 고야는 지극히 작은 한개의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한개의 점은 ‘정체성이 결집된’, 화산처럼 뜨겁고 강렬한 것이다.
회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야의 입지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가능해진다.
나폴레옹 침략에 항거한 스페인 민중의 저항을 형상화한 ‘5월3일’은 곧 피카소의 ‘게르니카’로 이어진다. 그뿐인가. 고야가 남긴 수많은 초상화들은 비로소 “회화의 언어로 인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평을 듣게 된다.
생전에 고야는 10여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대체로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릴 때 거울을 보고 그린다고 한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해 본다는 것이며 그 행위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와 무엇이 다른가. 아무도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고야는 중얼거린다.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그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고야와 동시대인이었던 괴테는 여든살에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베토벤은 관현악에 합창까지 추구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팔십 평생을 살다간 고야의 마지막 데생 제목은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이다.
조경란<작가>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