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은 보통 가로쓰기에 3자 내외. 그런데 국보1호인 숭례문(崇禮門·남대문) 현판은 왜 세로로 쓰여 있을까. 보물1호인 흥인문(興仁門·동대문)은 왜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글자 수를 늘리고 두 자씩 두 줄로 써넣었을까.
숭례문의 경우 불의 산(火山)이라 일컬어지는 한양 남쪽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서였다. 글씨를 세로로 길게 늘어뜨려 성문 밑을 막고 누르면 화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숭례문 현판은 세종의 셋째아들이자 조선의 명필로 이름을 떨쳤던 안평대군의 글씨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서체가 장중하면서도 단아하다.
임진왜란 때엔 이 현판을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 몇년 뒤인 광해군시대 어느날 밤, 지금의 서울 청파동 한 도랑에서 서광이 비치기에 파보았더니 숭례문 현판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흥인문 현판이 특이한 모양을 취한 것은 어인 까닭일까. 흥인문이 위치한 곳은 땅이 낮고 지세가 약해 현판의 글자 수와 행을 늘려 땅을 높이고 지세를 보완하려는 뜻이었다.
다음은 대한문(大漢門) 이야기. 대한문은 원래 대안문(大安門)이었다. 현판 이름을 고친 것은 1906년경. 안(安)자에 계집녀(女)가 들어가 있어 좋지 않다는 당시의 인습 탓이었다. 또 고종이 ‘대한문으로 고쳐야 국운이 창성한다’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란 말도 있다.
대한문은 현재 덕수궁의 정문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은 정문이 아니다. 이같은 사실은 이름에서 금방 드러난다. 모든 궁궐의 정문은 화(化)자 돌림. 경복궁의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의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의 흥화문(興化門)이 그러하다.
덕수궁의 원래 정문은 남쪽에 있던 인화문(仁化門). 일제시대때 그곳에 건물이 들어서고 길이 나면서 정문은 사라졌고 지금은 덕수궁 돌담길만 남아 있다.
경복궁의 광화문 현판은 한글.68년 복원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쓴 것이다. 한자를 한글로 바꾼 것에 관해선 찬성도 있지만 ‘원형 유지’라는 문화재 보존 원칙을 무시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본래의 한자 현판은 6·25때 불에 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현판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현존 최고(最古)의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이 썼다고 하는 충남 공주 마곡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물론 그 진위는 불확실하다. 이를 제외하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과 경북 안동군청 청사에 걸려있는 안동웅부(安東雄府)의 현판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모두 고려말 공민왕의 글씨.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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