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크기로 값을 매기는 호당 가격제가 있지만 그것도 문제점이 적지 않은데다 경제난의 여파로 허물어지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최근 경매제가 잦아지자 시끌벅적하다. 한편에서는 미술시장에 실제 소비자를 끌어들인다는 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시장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강력히 비난한다.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동숭갤러리가 주도하는 경매전. 동숭갤러리는 앞서 2월과 3월 두차례에 걸쳐 3백점 13억6천만원어치를 경매로 판 데 힘입어 8일 세번째 경매전을 마련한다. 출품작은 모두 1백95점으로 출발가만 8억원을 웃돈다.
동숭갤러리가 이처럼 경매전을 잇따라 펼치는 속사정은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 위축된 미술 시장의 돌파구로 숨은 큰손보다 실제 소비자들을 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다.
동숭갤러리의 이행로대표는 “두차례 경매에는 병원 은행 기관 등 실수요자가 많이 참석, 미술 시장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화랑가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화랑협회는 최근 동숭갤러리에 경매전 중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유는 가격질서의 문란. 동숭갤러리처럼 개별 화랑 차원의 경매전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면 가격의 객관성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우려다.
특히 동숭갤러리 경매는 출발가와 내정가가 미술 시장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결정되어 마치 재고처리나 바겐 세일하는 분위기라는 비난도 만만찮다. 이 경매에서 그림을 산 한 컬렉터는 다른 화랑에서 내놓은 같은 작가의 그림값에 대해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권상능 화랑협회회장은 이에 대해 협회 차원의 경매주식회사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가격 질서나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논란은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시장은 소비자의 것이고 미술품은 낙찰가가 얼마이든 공정한 방식을 통해 결정됐다면 공급자와 소비자가 서로 합의한 문화 상품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탓할게 아니다. 다만 현재 국내 미술시장에서 횡행하고 있는 이중 삼중 가격이나 밀실 거래가 더 큰 문제.
동숭갤러리 경매에 참가했던 한 컬렉터는 “갤러리측의 주장만큼 싸지는 않았으나 경매제는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며 “이를 계기로 국내 화랑들도 거품을 빼고 미술 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이뤄지는 방안이 나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허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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