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환갑을 맞은 시인 황동규. 때맞춰 출간된 두권짜리 ‘황동규 시전집’과 ‘황동규 깊이 읽기’(문학과 지성사)를 들추던 한 젊은 시인의 부러움 섞인 탄식이다.
그랬다. 만 스물에 미당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시인이 된 이래 40년에 걸친 그의 시 내력은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지는’, 달려가는 마음의 흔적이다. 그는 최근에도 변함없는 속도로 ‘버클리풍의 사랑노래’(현대문학 4월호) 등 신작시를 발표했다.
“내 시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내 대답, 인간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주기 위해 시를 쓴다. 변화 속에만 인간의 자유가 있다.”
그가 어떻게 변화해 왔느냐고? 연상의 여인에게 연시를 바치던 까까머리 고교생 때부터 환갑 나이가 될 때까지 그는 자기가 마음 준 사람과 사물, 그것이 깃들여 있는 세상을 자신의 방식대로 앓아왔다.
‘사람 피해 사람 속에서 혼자 서울에 남아’있다가 무반주 떠돌이로 떠난 강원도 몰운대 여행길, 문득 발견한 폐광을 보는 순간 ‘귀가 먹먹/아 사람 사라진 사람 냄새!’하는 그의 사랑법. 그 사랑 때문에 유신말기에는 ‘아아 병든 말(言)이다/발바닥이 식었다/단순한 남자가 되려고 결심한다’(‘계엄령 속의 눈’)고 절망하기도 했다. ‘풍장(風葬)’연작을 책으로 묶으며 덧붙였던 그의 감사말.
‘…아직 변치 않고 싱싱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나는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싱싱한 죽음 때문에 더욱 싱싱해진 삶에 감사한다.’
그와 ‘지음(知音)’의 우정을 나누었던 고 김현은 ‘그의 진면목은 비내리는 밤 두시쯤 스텐카라친의 절규를 들으며 고통스럽게 찡그리고 앉아있는 광대’라고 했다. ‘그의 시에서 보게 되는 지성의 움직임이 우리에게는 많이 귀한 것이다’라고 했던 미당의 평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성인과 광대 사이의 긴장을 조율하며 살아온 세월. 안면신경마비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쉰여덟의 그는 이렇게 지나온 시간을 회고했다.
‘…가만 헤아려보면 이 세상에서/안면 하나 마비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쉰여덟 해 동안 마음 들쳐메고 버텨온 것이 아닌가!/혼자 남몰래 안면 감추고 흐느끼기도…’(‘재입원’중)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