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냐? 「끼」냐? 요지경 속옷 『만발』

  • 입력 1998년 4월 14일 19시 52분


빨간 내복. 우리의 할머니들이 즐겨 입던 속옷. 혼절할 배앓이도 그 ‘새빨간’ 품에 안겨 있노라면 마술처럼 사라지곤 했다. ‘유사시’ 입은 채 간단한 외출도 가능했던(윗옷의 경우) 빨간 내복. 그러나 알고 보니 통풍이 안되는 나일론 재질에 몸의 기(氣)를 앗아가는 붉은 염료였다는 주장도. ‘개발시대의 속옷’이라나? 반면 “당시로선 획기적인 색감. 섹시함 그 자체. 때론 입고 다닐 수도 있는 지금의 ‘패션 파자마’의 중요한 실마리였다”는 감각세대의 목소리가 맞서는데.

‘기(氣)속옷’ vs ‘끼속옷’.

▼ 기속옷 ▼

경원대 한의대 임진석교수 편저 ‘추상한의학’(가서원)에 소개된 실험. 손수건보다 작은 비키니팬티와 아랫배를 감싸는 보통팬티를 서로 다른 여성에게 입히고 몸의 표면온도와 심부(직장·直腸)온도를 측정했다. 보통팬티가 일정한 직장 온도를 유지해 준 데 비해 비키니팬티의 경우 실험을 시작하자마자 직장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 몸 깊은 부분의 체온을 나타내는 것이 직장 온도. 결국 젊은 여성들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몸 깊숙한 곳에 ‘썰렁한’ 무리를 강요하고 있는 셈.

“여자는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를 받아야 부인병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치마를 입는 거죠. 속옷도 헐렁하게 입을수록 지기를 쉽게 받아들입니다.”(부경대 식품생명과학과 최진호교수)

몸에 착 달라붙는 남자 삼각팬티. 고유의 출입구(바람구멍)마저 없애 ‘부인 것’과 구별 안되는 이른바 섹시팬티. 고환의 ‘독립운동’을 억압하고 고환을 몸에 밀착시킴으로써 신체보다 3,4도 낮게 유지돼야 할 고환내 온도를 높이는 우(愚)를 범한다는 것.

“인류 역사를 통해 남성의 고환이 몸안에 들어가지 않고 돌출해 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선 남성피임법으로 사우나를 맹렬히 반복하여 고환을 뜨겁게 하는 방법을 쓸 정도입니다. 싸움 등 극심한 긴장상태에서만 응축되는 고환, 왜 일생을 애써 ‘긴장’속에 살려고 하는지…”(서울대 의대 비뇨기과 백재승교수)

다음은 색깔과 기의 관계. 전문가에 따라 견해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색도 골라 입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색에도 기가 있어요. 사상(四象·태양 소양 태음 소음인) 및 팔상(八象·사상을 각각 1, 2형으로 나눔)체질의학에 따르면 빨간색 노란색 감색 초록색 청색 보라색은 모든 체질에 나쁘고 검정색은 소양인에게만 좋은 겁니다. 중간색이 되는 흐린색과 흰색 분홍색 베이지색 등은 모든 체질에 좋고.”(서울대명예교수이명복박사)

“청색은 간을, 적색은 심장을, 황색은 위장을, 백색은 폐를 각각 도와준다는 것은 중국 황제(黃帝)가 쓴 한의학 기본서 ‘내경(內經)’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속옷의 색깔로도 내장의 운명이 영향받는다는 해석이 가능하거든요.”(경희의료원 한방부인과 김상우교수)

우리 선조가 그토록 고집했던 백의(白衣). 알고 보니 염색기술의 부족 때문이 아닌 원기(元氣)보존을 위한 건강묘술이라!

▼ 끼속옷 ▼

‘벗기지 않고 먹는다?’

서울의 한 성인용품전문점에 내걸린 ‘먹는 팬티’광고. 분명 입는 팬티지만 속옷이 아닌 ‘식품’으로 분류돼 보건복지부의 식품허가를 받아야 한다. 녹말 성분에 초콜릿 피나콜라다 등 맛을 입혀 진짜로 먹는다.

T백 팬티. 팬티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엉덩이 부분을 가느다란 T자형 끈으로만 처리한 다소 야하고 걱정되는 팬티지만 이것도 어느새 구식. 지퍼가 달린 지퍼팬티, 누르면 ‘해피 버스데이 투유’ 노래가 나오는 멜로디팬티, 방울팬티, 가죽팬티, 망사팬티, 수갑팬티, 턱시도팬티도 모자라 불끄면 ‘YES’란 글자가 선명히 보이는 야광팬티, 딸기 초콜릿 바나나 냄새를 펄펄 풍기는 향기팬티까지! 아예 속옷을 겉옷으로 입는 란제리룩의 시대. 몸에 밀착되는 화학섬유로 ‘허기(虛氣)’질지라도 ‘인기(人氣)’와 ‘분위기(雰圍氣)’ 얻어 ‘기분(氣分)’좋으면 그만?

“어차피 모든 걸 충족시킬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삼베로 만든 정력팬티 같이 ‘속보이는’ 속옷을 팔자는 게 아니지요. ‘섹시함’ 하나라도 확실히 잡자는 겁니다.”(서울방배동 팬티하우스 하용훈이사)

신세계백화점이 15∼25세 남녀 1백13명에게 물었다. ‘이성친구에게서 받고 싶은 선물은?’ 1위 패션내의(22%), 2위 안경테(20%), 3위 가발(15%). 섹시팬티 또는 퍼니(funny)팬티. 결코 누구(?)에게 보여주자는 노출욕 때문도, ‘나도 신세대’임을 표현하는 것도 아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이란 주장.

“고환의 온도도 중요하겠지만 삼각팬티도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어요. 신체일부가 일정 위치에 있지 못하고 ‘방황’하는 데서 빚어지는 심리적 이탈감은 어쩔 건가요.”(㈜좋은사람들 주병진사장) 남편에게 ‘촌스러운’ 백색 팬티를 사 입히는 우리 주부들. 가끔씩 ‘야한 팬티’ 고르는 남편도 눈감아주면 어떨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아실현’ 때문이라는데.

〈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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