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7백50㎖)가격이 강남 백화점들보다 5백원 이상이나 쌌기 때문.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주부 하모씨(33)는 좀처럼 집 바로 옆의 대형할인점을 이용하지 않는다.
하씨는 할인점에서 6천8백80원 하는 6개들이 캔 맥주 한박스가 조금 떨어진 S백화점에서는 1백10원 싸고 생필품에 따라서는 가격차가 1천원이상 난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됐다.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가격. 판매현장의 제품가격들이 소비자의 상식을 벗어나는 총체적인 난맥에 빠져있다. 극도의 내수침체로 업체마다 가격경쟁에 사활을 걸면서 상권간, 상권내 업태(業態)간 가격질서가 대혼란을 겪고 있는 것.
원가에 적당한 마진을 붙여 가격표를 붙였던 전통적인 가격결정시스템은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
임대료가 비싼 곳이 오히려 저렴한가 하면 할인점이 더 싸다는 것도 옛날 얘기. 업체의 농간을 막으려는 ‘권장소비자’가격 역시 유명무실해 소비자들은 매번 ‘속아 사는’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업태구별은 무의미하다, 유통점이 몰릴 수록 가격은 떨어진다〓경기 성남시 분당지역은 제품가격이 가장 싼 곳중 하나. 좁은 상권에 대형 유통점들이 몰린 덕택이다. 대형 백화점 할인점 슈퍼만 7개업체가 밀집해 있다. 이 때문에 분당지역에선 업태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
7백50㎖들이 N사 분유를 보자. 삼성플라자 1만2천2백원, 블루힐과 뉴코아백화점 E마트가 모두 1만2천3백원, 해태슈퍼 1만2천4백원으로 엇비슷하다. 한화스토아와 킴스클럽이 몇백원 싸지만 경쟁이 붙어 가격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경쟁업소보다 조금만 비싸다 싶으면 가격이 수시로 조정된다.
상권경쟁이 비교적 덜한 서울 강남의 유통점들은 대부분 분당보다 비싸게 판다.
▼같은 업체라도 상권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E마트의 경우 분당점에선 일산점보다 가격을 낮춰 판다. 일산점에서 각각 1천8백50원과 1만2천3백원을 받는 주스와 분유를 1백∼3백원씩 싸게 판다. 분당에 몰려있는 다른 업체와의 격렬한 경쟁때문이다.
5㎏짜리 A세제의 가격을 보자. 서울 잠원 강남점 1만1천2백원, 서초점 1만6백90원, 고덕 돈암 성북점 1만3백30원인 이 제품은 목3동점으로 가면 8천3백원으로 뚝 떨어진다. 상권에 따라 가격은 둘쭉날쭉이다.
T사는 아예 인근 업체에 대한 경쟁력을 파악한 뒤 자사의 모든 지점을 △경쟁우위 △약간우월 △경쟁대등 △경쟁약세 등 4개 등급으로 나눠 제품가격도 그에 맞게 결정하고 있다.
임대료부담과 제조업체의 납품가격 등은 고려할 개재가 아니다.
고객을 빼앗기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
▼소비자는 혼란스럽다〓유통업체간 저가경쟁이 일반화하면서 물가통제와 시장질서 정립을 위해 도입됐던 권장소비자가격체제가 무의미해졌다.
원가에 적정이윤을 붙인 가격결정체계가 무너져 믿을 만한 가격수준이 어디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소비자들은 말한다.
최근 정부가 검토중인 실거래가격표시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제품 생산원가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거래가격이 제대로 책정될 리 없다는 지적. 유통업체가 가격을 결정하는 판매자표시가격제(오픈 프라이스)도 담합과 시장과열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LG경제연구원 조성호(趙星鎬)부연구위원은 “상품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업체들이 챙기는 마진율이 어느정도인지 정보가 공개돼야 가격시스템이 제대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