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63빌딩 전망대. 한강을 굽어보던 남미경씨(33·서울 묵동)가 핀잔섞인 한마디를 던진다.
저기 아래 유람선 뱃머리에서 양팔을 찢어져라 벌린 여성과 뒤에서 얼싸안고 있는 남자는 아마도 영화(타이타닉)속 한장면을 따라하고 있는 모양.
“다은엄마, 놔둬. 남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요즘엔 능력이라니까.”(남편 손영진씨·37·건축업)
그러나 손씨 부부도 부러울 것 하나 없을 듯. 그들은 이미 ‘여의호(汝矣號)’의 우뚝 솟은 돛대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까.
▼ 돛대와 말뚝 ▼
여의도. 동에서 서로 흐르는 한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커다란 배의 모양. 맨 앞머리에 있는 63빌딩. 남산보다 2m 높은 2백64m짜리 ‘돛대’격. 한편으로는 모래땅이라 원체 허약한 여의도의 땅기운을 보충하고 세찬 물결에 ‘여심(女心)’인양 떠내려가지 않도록 ‘말뚝’을 사정없이 박는 역할도 한다.
“저기 끝에 가마처럼 생긴 게 국회의원 아저씨들이 있는 의사당이야.”(손씨)
“완전 ‘꼬랑지’에 있네, ‘꼬랑지’.”(딸 경은·7)
여의도광장 건너편의 KBS본관은 큰 덩치에 비해 그리 높지 않게 눌러앉은 것이 둘도 없는 토형(土形). 금빛으로 우뚝솟은 63빌딩을 불(火形)로 볼 때 두 건물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火生土)듯 서로를 마주보며 ‘키워주는’(相生) 모양.
▼ 허리가 강해야 ▼
나무를 심네, 마네 말이 많았던 여의도광장. 광장은 잃더라도 들어설 나무들로 ‘여의도의 힘’은 어느정도 세어질 듯.
“한강의 물기운을 이어받아 넓다란 공원에 수목이 생기니(水生木) 거대한 배 여의도가 지기(地氣)를 돋우어 떠내려 가지 않고 단단히 정박하는데 도움이 될 것.”(임학섭 청산풍수지리연구원장)
허리가 굳세지니 여의도가 평안(?).
내년엔 이것저것 훌훌 털어버리고 경기 남양주로 가 살아볼 작정인 주부 남씨의 관심사는 역시 아파트. 여의도고교 근처의 아파트촌. 강변이지만 결코 강북의 매서운 서북풍을 대번에 받지 않는다. 어떤 강풍도 결코 강의 흐름을 직각으로 뚫지 못한다는 풍수설을 증명하듯 아파트단지 내부는 한강 시민공원의 번잡함과는 달리 이상할 정도로 고즈넉하다. KBS본관과 ‘허리’를 사이에 두고 힘을 서로 주고받는 대칭위치.
“여기서 떨어지면 땅까지 1분 걸린다” “5분 걸린다”로 또 ‘한판 붙은’ 두딸 다은(9)과 경은. 손씨는 두딸을 “약수로 만든 파란밥 먹으러 가자”고 끌어안으며 아는 체 한마디.
“여보, 63빌딩이 바람불 땐 앞뒤로 30㎝씩 흔들리게 설계된 거 알아?”
“사람이나 건물이나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약한 체해야 안넘어가는 거겠지 뭐.”
〈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