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퇴원시켜 숨지게한 의사에 살인죄 첫 적용

  • 입력 1998년 5월 15일 19시 29분


퇴원하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내보내 숨지게 한 의사 2명에게 살인죄를 적용, 유죄를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합의1부(재판장 권진웅·權鎭雄부장판사)는 15일 “치료비가 없다”는 가족의 퇴원요구에 따라 중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서 5년이 구형된 서울 B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양모씨(34) 등 의사 2명에게 살인죄를 적용,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남편의 퇴원을 요구한 아내 이모씨(48)에 대해 같은 혐의를 적용,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씨의 지시를 받고 환자를 퇴원시킨 수련의 강모씨(26)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까지 의료사고의 경우 금고 2년 이하의 과실치사죄나 징역 3년 이상의 유기치사죄 등이 적용됐으며 징역5년 이상의 살인죄가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환자나 보호자의 결정에 관계없이 의사는 끝까지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천명한 판결로 의학적 판단보다 환자나 보호자의 결정권이 우선시되는 의료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비정상 신생아를 부모의 요청에 따라 조기퇴원시키는 등의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양씨 등이 환자 가족에게 퇴원을 만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가족은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모른 상황에서 치료비가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며 “환자의 명시적인 퇴원의사도 없는 상황에서 가족의 말만 듣고 퇴원시킨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호갑·나성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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