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독주회 『신이 내린 손놀림』

  • 입력 1998년 5월 15일 19시 29분


12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찾은 음악팬들은 숨막히는 경험을 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의 독주회. 손가락이 기막히게 돌아간다는 ‘서커스적’ 재미만으로서도 이날 연주는 압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7번 마지막 악장은 경이의 연속이었다. 질풍같이 고저음을 내딛는 스케일, 어깨를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쏟아놓는 거대한 음량….

“저 여자는 로봇 아니면 외계인일 거야.”

중간휴식시간,전문피아니스트와음악애호가들은 ‘피아노의 귀신’으로 불렸던 리스트의 부활을 논하며 혀를 내둘렀다.

“얌전하게 ‘월광’이나 연주해봤자 주목받지 못하는 걸요.”

독주자는 유독 기교적인 난곡으로 프로그램을 채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알알이 고른 터치, 완급을 교묘히 조절하는 심미적 안목은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대곡에서도 이 미모의 기교파 피아니스트가 충분한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연주 뒤 로비는 사인을 받으려는 긴 줄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정작 객석은 절반 가까이 비어있었기에 더욱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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