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故 조지훈-김수영씨 30주기 맞아 재조명 활발

  • 입력 1998년 5월 18일 19시 02분


그들이 떠난 후 30년. 시간의 켜가 쌓여갈수록 한국 시사(詩史)에 남긴 그들의 그림자는 더욱 또렷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68년, 불과 한 달의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난 김수영(1921∼68년6월16)과 조지훈(1920∼68년5월17). 30주기를 맞아 후학들은 새로운 관점으로 두 시인 ‘다시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철학자 김상환교수(서울대)는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기고한 ‘김수영의 역사존재론’에서 “그가 생각한 시작(詩作)은 역사 이념 세대 계층간의 단절을 잇는 교량술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언이다/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64년작, ‘현대식교량’중)

김교수는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은 ‘한글 세대 이전과 이후, 도시와 농촌, 전근대와 근대, 주지주의와 감성주의, 전통과 현대, 근대와 탈근대’로 분열돼 있던 당시 사회상에 대한 김수영의 현실인식이며 교량은 이를 잇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그에게서 돋보이는 현실인식은 ‘적과의 공존’을 인정한 점.

‘…아픈 몸이/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온갖 적들과 함께/적들의 적들과 함께/무한한 연습과 함께’(61년작, ‘아픈 몸이’중)

김교수는 “김수영은 병든 역사와 건강한 역사가 한몸이며 새 역사가 태어나는 장소는 지나간 역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다”며 ‘모더니스트’ 혹은 ‘민족중심주의자’로서 김수영을 틀 지워온 데 대해 이견을 제기한다.

조지훈에 관해서는 그의 시들이 보여주는 ‘서정성’의 무게를 새롭게 가늠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문학평론가 이숭원교수(서울여대)는 ‘현대시학’ 5월호에 기고한 ‘조지훈 시와 순수의 서정성’에서 ‘청록파 국학연구가 선비’등의 이름으로 그를 규정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돌출된 특징을 단편적으로 합해놓은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교수가 주목하는 시는 조지훈이 종군문인단으로서 포연 가득한 전장을 둘러본 뒤 발표한 ‘지옥기’(51년).

‘…첫사랑이 없으면 구원의 길이 막힙니다. 누구든지 올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갈 수는 없는 곳, 여기에 다만 오렌지빛 하늘을 우러르며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기도만이 있어야 합니다.’

이교수는 “조지훈은 첫사랑의 순수성만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커다란 힘이라고 믿었다”며 “일견 무력해 보이는 순수의 서정성이 정신의 큰 힘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인 오탁번교수(고려대)는 다른 추모글에서 “아름다운 서정시인의 깃털같은 가벼움이 지조 있는 지성인의 무거움에 압사당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한편 한국시인협회(회장 정진규)는 생전에 시인협회장으로 활동했던 조지훈을 기려 10일 경기 마석 조지훈선생 묘소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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