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오늘의 작가상]이치은의 소설 「권태로운 자들」

  • 입력 1998년 5월 18일 19시 03분


혁명가들이 절멸한 시대에 체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누구인가.

‘98 오늘의 작가상’(민음사 주관)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스물일곱살의 작가 이치은. 그의 답은 간명하다. ‘권태로운 자’들, ‘권태에 기생하는 자’들….

컨베이어벨트의 운행속도에 맞추려다 결국 기계 부품의 하나로 딸려들어가고 말던 찰리 채플린이 보여주었듯 ‘모던 타임스(modern times)’는 구성원들에게 ‘질서에의 절대복종’을 요구한다. 혁명가들조차 옛 질서를 파괴하고 전복한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고 광분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모든 질서의 국외자들이 있으니 바로 어떤 체제의 옷도 꼭 맞게 입지 못하는 권태로운 자들.

카프카의 ‘성(城)’의 주인공 K, 르 클레지오의 ‘조서’에 등장하는 백화점 쇼핑광 폴로, 장 필립 투생의 ‘욕조’에서 몸이 국수가락처럼 불어도 목욕탕에서 빠져나올 줄 모르던 익명의 남자 무슈(Monsieur)….

선진국 출신의 이들과는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달랐던 한국에서도 개화기 이래 권태의 명맥을 이어온 인물들이 있으니 ‘날개’의 이상, 하일지의 ‘경마장의 오리나무’에서 언덕에 불을 놓고 도망쳐버렸던 그 남자, 그리고 ‘구석기시대의 다산성여인’처럼 풍만한 가짜 가죽소파를 “오우 소파, 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중의 무위도식자가 그들이다.

작가 이치은은 문학사속에 빛나는 이 불온한 권태의 주인공들을 황지우 시 속의 소파씨 아파트에 불러 모은다. 소설의 제목은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그들은 도망중이다. 거대한 현대사회의 시스템을 움직여나가는 보이지 않는 손, ‘성(城)’이 암살자인 ‘기사(騎士)’를 동원해 체제를 좀먹는 권태로운 자들을 하나씩 처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내는 혼성모방의 기법, 쫓고 쫓기는 자가 벌이는 가벼운 추리게임, 희극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15층 아파트 한 칸에서의 기묘한 동거’등이 얼개를 갖춘 속에 ‘TV가 영혼의 창’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숨막히는 권태가 매끄럽게 묘사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권태는 왜 체제의 적인가’라는 핵심질문에 대한 답이 설득력있게 전달되지 않는 점.

“권태로운 자들을 누가, 왜, 그렇게 조직적으로 죽여야 하지? 어차피 내버려두어도 그들은 손 하나 꼼짝하지 않을 텐데.”(소파씨)

“니 자신 속에 깃들여 있는 권태에게 물어봐. 그가 어디로부터, 왜 왔는지.”(‘경마장의 오리나무’의 그)

작가는 “권태는 세밀화되고 조직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부적응증이며 그런 점에서 조명받아야 할 징후”라고 집필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의 사위 폴 라파르그가 자본제의 착취구조에 맞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 것이 19세기말의 일이니 권태의 재조명도 이미 오래된 일.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거대한 세계체제에 사로잡혀 사는 20세기말 한국독자들을 위해 작가는 개인의 삶을 틀지우는 ‘시스템’의 지배력과 ‘권태’의 반역적 에너지를 좀 더 시대적 감수성에 맞게 형상화해야 하지 않았을까.

참고로 샐러리맨인 작가는 자신의 창작이 ‘근무수칙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징계받을 것을 염려해 책에 사진을 싣지 않았으며 필명을 사용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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