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축성 100주년]한국 천주교의 첫 본당

  • 입력 1998년 5월 27일 20시 14분


《서울 명동성당에 이르는 오르막길. 그곳에선 오늘도 어김없이 구원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온 명동성당이 축성(祝聖) 1백주년을 맞았다. 한국 천주교회를 잉태하기 위해 기꺼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곳, 칠흑같은 독재의 그늘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던 곳, 명동성당. 그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한국 근현대사와 그 영욕을 함께 하며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해온 ‘뾰족집’, 서울 명동성당.

한국 천주교의 첫 본당이자 천주교의 상징이요,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잡은 명동성당이 축성 1백주년을 맞았다. 1898년5월29일, 7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 지 한세기가 지난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탑으로 구한말 장안의 명물이었던 명동성당의 당시 이름은 종현본당. 명동의 당시 지명은 종현이었다. 명동성당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광복 이후.

명동성당은 그 자리부터 의미심장하다. 1784년 명동 주변 명례방에서 한국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이 정약전 등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결성, 조선 천주교회를 출범시켰기 때문.

우리나라 유일의 순수 고딕양식인 명동성당은 건축사적으로도 그 의의가 크다. 전체 길이 68m, 폭 29m, 높이 23m, 종탑 높이 47m, 건축 면적 4백27평. 전체부지 7천1백여평. 설계는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한국 이름 고의선)가 맡았다. 당시 양옥 건축 기술자가 없어 중국에서 사람을 데려와 일을 시키기도 했다. 내부는 십자형 평면에, 공중 회랑과 높은 창, 무지개 형상의 궁륭 천장으로 되어 있고 외부는 고딕 장식을 통해 웅장함을 뽐내고 있다.

성당 지하엔 19세기 천주교 박해로 희생당한 성인 5위와 일반 순교자 4위의 유해를 봉안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성스러운 피가 명동성당을 떠받들고 있는 셈이다. 명동성당은 이같은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77년 사적 258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명동성당의 진정한 힘은 다른 데 있다. 어두웠던 시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터전이 되었다는 사실. 75년 정의구현사제단의 ‘인권회복 및 국민투표 거부운동’ 이후 명동성당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87년 6월항쟁은 그 찬란했던 정점.

명동성당의 이러한 상징성은 ‘낮은 데로 임하는’ 천주교 사제들의 실천적 양심에 힘입은 바 크다. 그 구심점은 김수환 추기경.

29일은 김추기경이 서울 대교구장에 착좌(着座)한 지 30주년 되는 날이기도 하다. 5월29일, 이날은 명동성당에 있어 영원히 성스러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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