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가 계속 살아남기 위한 생존네트워크. 사람과 사람의 커넥션인 ‘줄서기’가 직장 안팎에서 ‘확장’되고 있다. 해고 등으로 사내 역학관계가 급변하면서 ‘줄서기’도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오민석씨(37·가명·D증권 차장)는 명예퇴직제 실시 후 줄서기 전략을 수정했다. 잘 나가는 임원에 ‘줄’을 대어놓고 있었지만 한 줄로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만약 그 임원이 나가게 되면 여파가 자신에게도 미칠 것은 뻔하기때문이다.
그래서 고향 선배와 대학 선배인 다른 간부들에게도 최근 줄을 ‘뻗었다’. ‘양다리 걸치기’ 작전. 덕분에 술자리와 점심약속이 늘었지만 “그래도 여러 줄에 서 있는 만큼 든든하다”고 믿고 있다. 다만 사내 인맥이 복잡하다는 소문이 나면 오히려 위태로울 수 있어 보안에 유념하고 있다.
기업마다 사조직은 엄격히 규제해 왔지만 줄서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시대 이후 오히려 점조직처럼 강화되고 있는 현실. 미래의 불확실성 탓이다.
“능력만 있다고 직장에서 살아남는 건 아니죠. 직장일도 결국 사람 관계 아닙니까. A사 P부장(42)의 뼈있는 한 마디.
줄서기는 ‘상향식’만 있는 건 아니다. 생존과 성공을 위해서는 후배들과의 유대도 필수다.
줄서기의 이데올로기도 따지고 보면 ‘윈―윈(WIN―WIN)’ 전략. B사 S부장(38)은 “팀이나 프로젝트 단위로 처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후배들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화살은 결국 내게 돌아온다”고 토로한다. 그도 새로운 팀을 짤 때는 가능한한 호흡이 맞고 능력있는 후배가 오도록 물밑 작업을 한다는 것. 이것도 결국 인맥을 형성한다.
사내에서 남성에 비해 열세인 여성의 경우 계모임 형태로 뭉치기도 한다. 사우나 스포츠센터를 통한 줄서기도 있다. 학연 지연을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 임원이 잘 가는 사우나나 스포츠센터를 다니는 것. 건강에도 좋고 ‘거짓의 옷을 벗어 버린’ 상태에서 자연스레 만나 인간적인 관계를 쌓을 수 있다는 계산.
심지어 노동조합에 줄을 대놓는 경우도 있다. 노조의 일은 안하지만 간부와 친분을 쌓아두자는 것. 최소한 살생부에 올라도 노조와 회사측의 ‘빅딜’ 때 구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 탓.
대다수의 줄서기가 은밀하고 베일에 가려있지만 공개적인 형태도 있다. 스터디그룹과 사내 동호회가 대표적인 예. 직무와 관련된 학회, 어학학습모임이나 산악회 바둑클럽 등 동호회를 만들어 친분을 다진다.
요즘 동문회 모임에 사람수가 부쩍 늘어난 것도 줄서기 다각화 전략의 하나. 4월말 서울 삼성동의 한 중국음식점. 전산계통 종사자로 구성된 B고교 동문회 모임이 열렸다. 예년에는 50명도 채 안모이던 모임에 1백여명이 몰렸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박우성연구위원은 “줄서기가 성행하는 건 개인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며 “극심한 고용불안 시대에 줄서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종래기자〉jongrae@donga.com
[당신의 「줄서기」정도는 몇 점?]
“조직사회에서 ‘줄서기’는 무시하면 도태되고 과하면 패망하는 ‘양날의 칼’이다.”(퍼스널석세스아카데미 김원규 원장)
조직안에서 ‘나’는 어느 정도 연줄에 의지하고 있는 걸까.
김원장의 ‘줄서기 자가진단법’ 10개항.
▼채점방법
△매우 그렇다〓4점△그런 편〓3점△보통〓2점△그렇지 않다〓1점△전혀 그렇지 않다〓0점
▼평가
△총점 23점 이상〓‘확실히’ 줄을 선 사람△18∼22점〓중용(中庸)△17점 이하〓줄서기가 ‘취약’한 편.
①동문회 향우회등회사내‘연줄모임’에 반드시 참석하며 ‘계보’ 상사의 경조사는 반드시 챙긴다.
②업무와 관계없이 ‘계파 보스’인 상사를 주 1회 이상 만난다. 명절, 인사철이면 보스 집에 선물을 들고 찾아간다.
③보스의 경쟁자측 정보를 들으면 잊지않고 ‘보고’한다. 비서실을 통해 사주의 동향을 살핀다.
④보스 자녀의 성적이나 진학상황, ‘사모님’의 건강문제를 주1회 이상 체크한다.
⑤연줄로 이어진 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가능하면 회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을 선택한다.
⑥‘경쟁계보’로 분류되는 사람과 얘기할때 말조심을 한 적이 있다. 업무성적은 떨어져도 ‘계보’인 후배가 예뻐 보인다.
⑦‘계파 보스’와 사주의 관계를 수시로 체크한다. 중역인사가 나면 ‘정치적 이유’가 결정적이었다고 판단한다.
⑧자기 주머니나 자기가 맡고 있는 부서의 경비를 털어 보스의 술값을 처리한 적이 있다.
⑨회식때 보스의 술잔이 언제 비는지 신경쓴다.
⑩부부동반 모임에서 아내를 시켜 ‘사모님’이 심심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