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취득 이회성씨-이호철씨 특별대담]

  • 입력 1998년 5월 31일 20시 40분


《‘조선’국적을 버리고 50년만에 ‘한국’국적을 취득한 재일작가 이회성(李恢成·63)씨. 그의 재일 외국인 신분증명서에 적혀 있는 ‘조선(KOREA)’이란 국적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재일 외국인 신분증명서를 신청하면서 그가 고집한 국적 ‘조선’은 ‘남북 분단 이전’의 상태, 그리고 ‘통일 조국’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기도 한 그의 ‘이상향(理想鄕)’이다. 사할린에서 태어나 45년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탈출한 이씨는 69년 문학월간지 ‘군조(群像)’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해 72년 ‘다듬이질하는 여인’으로 재일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은 유신독재를 다룬 ‘금단의 땅’,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한민족의 고단한 삶을 그린 ‘유역(流域)’ 등. 그러나 72년 한국 방문 이후 일본에서 반유신독재 운동을 펼쳤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해왔다.

동아일보는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해 국적 변경을 선언한 이회성씨와 그의 절친한 문우인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6)씨의 특별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힐튼호텔.》

이호철〓3년만이군요. 우선 선생의 한국 국적 취득을 축하합니다. 그래서인지 얼굴에 화색이 도는군요.

이회성〓긴장하고 있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한국인이 된다고 하니 기쁘기도 하고 긴장도 되는군요.

이호철〓그동안 국적 변경에 대해 조심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의 심경은 어떻습니까.

이회성〓나무 하나, 건물 하나, 모든 것이 다 내 것인 것 같습니다. 72년 한국에 와서 남산 중앙정보부 건물을 보았을 때는 무서운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요.

이호철〓그러니까 모든 풍경이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말이군요.

이회성〓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후반기에 삶의 형식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망명자로 지내야했던 저의 신세가 외롭고 서글펐습니다. 이제 한국인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이호철〓어쨌든 큰 결단을 내린 것을 보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국적 변경이 이선생의 작품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이회성〓72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한편이라도 좋으니까 우리 글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요.

이호철〓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시작해 주세요. 너무 부담 느끼지 말고요. 그동안 일본 아사히신문에 난 칼럼이나 다른 에세이를 통해 선생의 활동을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일본에서 글을 쓰면서 남북 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분단 상황에서 교포 작가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회성〓글쎄요. 솔직히 저로서는 제 문제가 더 걱정입니다. 저의 문제는 민족입니다. 나는 과연 어느 민족인가 하는 것 말이죠. 나의 현실을 어떻게 소설에 담아낼까 그리고 세계화 시대에 민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런 것이죠.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이호철〓재일 한국인 작가들이 너무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대립틀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가요. 최근 들어 세월의 변화는 그 폭이 엄청나다고 봅니다. 그 변화에 적응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죠. 교포 작가들이 좌우, 진보 보수에 대해 민감한 것 같은데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회성〓인정합니다. 과거는 사라지는 겁니다. 시대의 조류죠. 하지만 상실감 허탈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계층간 화합 절실” 이호철〓김대중(金大中)대통령 당선에 대해 감동 어린 글을 발표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김종필(金鍾泌)총리서리와의 연합에 대해선 당혹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실용적 대처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좌우가 아니라 인간이고 현실이기 때문이죠. 교포 문학인들의 견해는 어떤가요.

이회성〓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이호철〓이제 한국인이 되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고통에 동참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의 IMF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회성〓동포의 한사람으로서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겨내야 합니다. 특히 위기 극복에 노력하고 있는 김대중정권을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정권은 옥동자이니까요. 그런데 계층간, 계파간에 자꾸만 상대의 발을 잡아당기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당쟁과 같은 불행했던 역사가 생각납니다.

이호철〓동감입니다.

이회성〓그래서인지 일본에 귀화하는 교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포 젊은이들이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남북은 싸우고 남쪽은 다시 동서로 갈라지고….

이호철〓이선생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고비 고비를 힘겹지만 그래도 잘 헤쳐나왔습니다. 가능성, 아니면 천운이랄까요. 너무 정치 얘기군요. 그동안 한국문학은 좀 들여다 보았습니까.

이회성〓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호철〓지금 한국은 IMF로 인해 출판계나 문단의 타격이 매우 심각합니다. 물론 거품이 있었기 때문이죠. 작품이나 잡지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회성〓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 아닐까요.

이호철〓일본 문단은 어때요.

이회성〓대중 오락 소설이 잘 나갑니다. ‘문학의 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니까요. 그러나 저는 낙관적입니다. 신인상 심사를 해보면 그 엄청난 응모작에 입이 딱 벌어지니까요.

이호철〓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좀전에 자신의 문제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자신의 문제는 과연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이선생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조국 분단 사할린동포같은 것이었는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건가요.

이회성〓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이호철〓제생각으론 선생이 아직도 좌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데….

이회성〓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이호철〓저는 과거의 틀은 모두 낡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옳고 그름을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요. 집착은 도로(徒勞)입니다. 모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이회성〓물론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하고 있으니까요. 다양하고 다성적(多聲的) 다중심적(多中心的) 세계라는 말이겠죠.“유미리 큰작가 될것” 이호철〓일본 젊은이들의 소설 경향은 어떻습니까.

이회성〓가상현실에 많이 집착합니다. 거기에서 파랑새를 찾으려 하죠. 그러나 모두가 거기에 매달리면 나머지 부분은 어쩌겠다는 것인지 걱정입니다.

이호철〓지난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교포작가 유미리씨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회성〓큰 작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봅니다. 한국에 와서 민족을 말하지 않던가요. 젊은이인데도 구수한 맛이 나는 작가입니다.

이호철〓지금 구상 중인 작품은 혹시 없습니까.

이회성〓아직….

이호철〓이번 방한 기간 중에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나요.

이회성〓며칠동안 백제 땅 부여를 좀 여행하려고 합니다.

이호철〓이번 한국 국적 취득을 계기로 이선생의 삶과 문학이 한층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합니다.

〈정리〓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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