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살리기 풍수기행 5]서울 압구정동,재물 쌓일 형상

  • 입력 1998년 6월 11일 19시 22분


‘압구정동’은 하나의 문화기호다. 한국사회가 이룬 고속성장의 영롱한 열매이자 졸부적 소비행태의 축도. 선망의 이름인 동시에 쓰라린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애증의 지명….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남의 광장’ 구실을 하는 패스트푸드점 ‘맥도널드’ 앞 거리.

먹고 입고 꾸미고 즐기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욕망이 최첨단형으로 진열된 쇼윈도같은 이 거리에 서서 문득 질문을 던진다. 왜 압구정동이어야 했을까. 선택된 땅이 된 데에는 경제 사회적 맥락 외에 압구정동이 갖춘 천혜의 요건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 것일까.

“사방이 물에 둘러싸여 땅 기운이 보호받는 형상입니다. 땅과 물은 서로 상반되는 성질이지만 맞물리면 서로의 기를 높여주지요.”

풍수연구가 임학섭씨(02―981―8807)가 강 건너 옥수동 언덕에서 압구정동을 굽어보며 이르는 말.

압구정동을 감싸고 흐르는 물은 양재천과 탄천. 양재천은 한강을 향해 동쪽으로 흐르고 탄천은 북쪽으로 흐르다 양재천과 만나 한강에 이른다. 한강을 보고 섰을 때 왼편 강남대로는 도로를 물로 해석하는 풍수상 거대한 물길이다. 결국 압구정동은 거대한 물 소용돌이에 둘러싸인 형국.

“풍수에서는 물(水)을 재물로 봅니다. 사방이 물길인데 지상으로 한남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를 놓고 땅밑으로는 지하철로 강북을 연결하는 등 ‘인공물길’을 사통팔달로 내 놓았으니 더더욱 사람과 물자가 모일 수밖에요.”

압구정동의 또하나 이점은 강북의 남산이 서북쪽에 앉아 풍수지리에서 피해야할 첫 조건인 서북풍을 자연스레 막아준다는 것이다.

‘압구정동의 명동’은 갤러리아백화점 앞 거리. 서울지도를 놓고 보면 성수대교 남단의 현대 한양아파트와 갤러리아백화점이 들어선 지역이 유난히 한강을 향해 돌출해 있다.

임씨는 이 지역이 압구정동 일대에서 가장 땅기운이 강하게 뻗어 나가는 곳이라며 “거북이 머리를 들고 물로 들어가는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갤러리아백화점 앞길은 청담동쪽에서 언덕을 이루던 압구정로가 평지로 완만하게 내려앉는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흘러내려오던 물, 즉 재물이 고여 번화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해석.

이곳 풍수에 대한 예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풍수연구가 최창조씨는 진작부터 “인간이 저지른 오염으로 압구정동이 서울의 하수처리장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한 바 있다. 강건너 성수동은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에 유입되는 지점.

청계천은 서울 제일의 명당수였지만 지금은 오수 수준으로 떨어졌고 중랑천의 오염도 못지 않다. 최씨는 “강북의 두 명당수가 깨끗이 보존됐더라면 여전히 명당이었을 압구정동이 지금은 머리부터 오물을 뒤집어 쓰고 있는 형국”이라고 주장해왔다.

특이한 것은 강북의 청계천이 동쪽으로 흐르다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유입되는 것과 압구정동에서 동류하던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 흐르는 모양이 닮음꼴이라는 것. 풍수지리의 고전적 해석대로라면 물에 둘러싸인 명당임에 분명한 강북과 강남의 두 지역이 인간의 끝모를 욕심 때문에 빛을 잃는 현상이 시간차를 두고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압구정동을 지금껏 ‘명당’으로 치켜세우던 임씨의 안타까운 한마디.

“물로 들어가려는 거북의 머리를 무거운 철교와 고층아파트로 내리 누르고 있으니…. ‘택리지’에서도 살기 좋은 곳을 만드는 조건으로 자연이 준 혜택만큼이나 인심이 중요하다고 했는데….”-끝-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