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아내의 옷차림 간섭

  • 입력 1998년 6월 17일 19시 13분


▼아내 생각▼

박민아<26·전업주부·노원구 상계동>

95년말 남편 선배의 소개로 만나 한달간의 ‘불꽃 연애’ 끝에 웨딩마치를 울렸습니다. 짧은 연애기간이었지만 ‘오빠’의 패션감각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막상 결혼하고 보니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보이더라고요. 과장이라는 직함 때문인지 감색이나 쥐색 싱글에 흰색 와이셔츠만 고집하는 거예요. 저는 컬러셔츠에 줄무늬양복같은 스포티한 차림으로 출근했으면 하거든요. 주말에는 발랄하고 단정한 캐주얼을 입히고 싶은데 오히려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셔츠를 좋아하는 거였어요.

엉뚱하게 ‘튀는’ 부분도 있었죠. 결혼후1년쯤됐을까. 어디서차이나칼라 재킷을 사온거 있죠. 그날 첫 부부싸움을 했어요. 한번은 ‘나훈아스타일’의 윙칼라 블라우스를 사오는 바람에 말다툼을 벌였죠. 저는 심플하고 세련된 것이 좋지 ‘느끼한’ 건 질색이거든요.

지금은 전적으로 제가 남편 옷차림을 책임지고 있어요. 패션감각이라면 자신있습니다. 결혼한 남자의 사회생활 옷차림, ‘아내의 감각’으로 평가되는 것 아닌가요. 다른 여자들 마음에 들면 뭐하겠어요. 아내인 제가 보기 좋아야죠. 남편의 ‘코디권’은 아내의 것. 제가 하자는대로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남편 생각▼

김종복<33·웨스턴조선호텔 인사과장>

직장 선배와 백화점에 간 일이 있습니다. 세일하는 양복 한벌을 선뜻 고르는 선배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한벌 고르지 않겠느냐는 선배의 말에 “와이프와 상의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가 망신했습니다. 아! 아내의 ‘허락’없이 옷을 살 수 있는 자유….

중역회의에도 자주 참석하는 저로서는 출근할 때 점잖은 스타일의 양복을 입을 필요를 느낍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정반대로 아주 화려하고 ‘남성적’인 옷차림을 하고 싶죠.

차이나칼라 재킷은 총각시절부터 꼭 한번 입어보고 싶었는데 세일을 틈타 산 것이었죠. 아내의 반대로 환불받으러 갔다가 ‘행사용품’은 안된다고 해서 지금까지 옷장안에서 썩이고만 있습니다. 그 옷을 입으면 같이 외출 못하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그후로 스스로 옷사기를 포기했어요.

아내의 옷차림 간섭. “결혼이란 이런거구나”라고 처음 뼈져리게 느낀 부분입니다. 아내에게 ‘옷차림 감각’을 의심받거나 무시당할 때의 기분, 말로는 못합니다. 제게도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나훈아같은 제 체격에 아내가 사주는 ‘쫄티’나 일자바지가 어울리겠어요? 잃어버린 ‘코디권’을 일부라도 되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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