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한국 젊은이들,호주서 생생한 체험

  • 입력 1998년 6월 17일 19시 43분


호주 시드니에서도 중심가인 뉴웨일즈. 번화한 주택가를 지나 허름한 아파트 5층 차윤석씨(28)집에서 이달초 저녁 파티가 열렸다. 라면스프 한개로 끓인 김치찌개, 양배추 샐러드, 소주 한병이 놓여진 상차림이었지만 시드니 생활 이틀째인 양윤경씨(23)는 물설고 낯설은 땅에서 만난 오빠 언니들 배려가 고마운 표정이다.

이들은 모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로 날아온 한국 젊은이들.

이미 비자만료 기간 1년을 넘기고 관광비자로 2개월째 체류중인 차씨가 대장격이다. 대학에서 금속공예학을 전공하고 다이어감정 자격증까지 갖고있는 그가 연봉 2천만원을 받던 직장을 포기하고 호주행 비행기를 탄 것은 ‘영어 스트레스’때문. 외국인직장에 있다보니 영어에 대한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

그는 지난 1년동안 주방보조 쇼핑센터청소 물건포장 짐수송등 갖가지 일을 전전하며 돈을 모아 방3개 딸린 아파트를 전세로 장만했다.

그는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애들이 스무살도 안되는 나이에 배낭하나 달랑 메고 와서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7개월전 이곳에 온 김미경씨(26)는 대학 졸업하고 2년간 직장생활하다 온 경우. 시드니 도심보다는 인근 농장을 돌아다니며 과일따기, 채소가꾸기, 축사개조, 베이비시터(농장주인 애기돌보기) 등을 했다.

그녀가 호주에서 배운 것은 ‘돈’이나 ‘영어’보다 문화적체험.

특히 남눈치 안보고 남자들과 똑같이 일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호주여성들에게 큰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대학은 일류대를 가야하고 직장은 대기업에 들어가야하고 능력있는 남편만나 시집가야한다는 어른들 성화에 떼밀려 살면서 한번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었다”며 “흙을 만지는 일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정훈씨(28)는 아예 학교까지 포기한 경우. 지방대생은 취업에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에서 제대하고 복학해봐야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았다. 지난 8개월간 해온 일은 청소일. 비행기표와 며칠 생활비만 달랑 들고와 새벽5시부터 하루6시간씩 쉬지않고 일한 끝에 지난달엔 고향부모님께 호주돈으로 4백달러 용돈까지 보냈다.

한국을 떠날때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IMF가 터진뒤 에는 “생각잘했다”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되도록 호주에 오래 머물며 무역등 사업구상을 할 생각이다.

이들은 “워킹 홀리데이가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영어도 배우고 하는식으로 뭐든지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말한다.

치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이들은 “특히 고생 모르고 자란 젊은이들에게 육체노동은 생각처럼 쉽지않다”며 “다만 색다른 경험을 하려는 도전의식을 가진 젊은이들에겐 또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니〓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