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기 어려워졌으니) 못돌려주겠소.”
최근 법원에는 금융실명제나 부동산실명제 때문에 타인 명의로 예금했거나 보관시켰던 돈을 되찾기 위한 소송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명의를 빌려줬던 측이 원주인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고 시치미를 떼는 ‘금융사고’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
남매지간인 이모씨 등 5명은 27일 아버지의 친구 박모씨를 상대로 예금자명의 변경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이들은 “아버지가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직후인 93년말 훗날 정계진출을 위해 박씨 명의로 예금한 23억여원은 분명히 우리 가족 돈”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법 본원 관계자에 따르면 예년에는 한달에 몇 건뿐이던 이같은 소송이 최근에는 1주일에 5∼7건으로 늘었다는 것.
금융기관들은 이같은 소송에 대해 “주로 당사자간 신뢰 상실에 따른 개인적 분쟁이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을 따를 뿐”이라며 “별도의 대책은 없다”는 반응이다.
K금융기관 실무자는 “최근 예기치 않은 ‘금융사고’가 생겨 자신의 차명계좌에 대해 예금지급 정지를 요청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경제상황이 좋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