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삶 지각변동]「내집마련」미루고 40세이후 대비

  • 입력 1998년 6월 28일 19시 14분


경력 8년차 증권투자분석가 윤모씨(35·서울 도화동). 내달 아내와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2년간 MBA(경영관리학석사)과정 유학을 떠난다. 친구들은 “난세에 팔자좋다”고 부러움 반 비아냥 반의 반응이지만 퇴직하고 아파트를 월세로 놓아 유학자금을 마련한 그의 각오는 비장하다.

유학을 결심한 것은 2년전. “전문 식견에 어학실력까지 갖춘 후배들이 입사하는 걸 보며 나이 마흔 넘어서도 ‘저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지금 능력제고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마흔 이후 자리보전에 급급한 신세가 될 게 뻔하더군요. 대량실직에 연봉제까지 거론되는 요즘 상황을 보니 일찍 결심하길 잘했다 싶어요.”

한 가족의 생애주기(Lifecycle) 중 ‘내집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로 요약돼온 30대. 30대의 설계도가 달라지고 있다. 내집마련이나 재산증식보다 ‘40 이후(After Forty)’에 대비한 재교육, 재투자가 우선순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 인테리어업체 디자이너 오모씨(36·서울 수서동)는 내년초 대학동창, 후배와 창업할 계획. 자금은 내집마련을 위해 6년간 부은 적금. 전세를 벗어나는 대신 창업으로 투자방향을 바꿨다. 전세값 인상에 대비해 창업자금에서 1천만원은 빼놓았다.

“‘평생직장’ 시대는 끝났잖아요. 실직한 뒤 집 한 채 갖고 있어봤자 곶감 빼먹듯 팔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애도 어리고 살림규모도 작은 30대에 스스로 ‘고용창출’을 하는 게 낫죠.”

30대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서는 ‘바톤터치’ 방식으로 아내와 남편이 번갈아 자기재투자를 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올해초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K대사범대에 편입한 결혼2년차 주부 신모씨(28·서울 돈암동). “둘 다 고용이 불안정해서는 곤란하다. 아이를 갖기 전에 한쪽이라도 안정된 직장을 갖도록 모험해 보자”는 샐러리맨 남편(33)의 제의에 과감히 사직서를 냈다. 신씨가 교직을 얻고 아이를 가진 뒤에는 남편이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부부 설계도.

‘자기재투자’를 우선시하는 30대의 변화는 IMF시대의 일시적 현상일까. 전문가들은 “굳이 IMF체제가 아니더라도 각 가정에서 인적 투자 중시 경향이 강화돼 왔다. 특히 부동산시장이 안정돼 내집마련에 전전긍긍하지 않게 된 것도 변화의 한 이유”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 여정성교수(소비자경제학)는 자기재투자 중시 풍조가 라이프사이클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 “과거에는 대학졸업까지를 자녀부양기로 생각했지만 요즘 부모들은 대학졸업 후에도 10년간은 더 부양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30대는 선배세대를 보며 자신들의 중년이후도 ‘자녀부양기간은 길어지고 노후준비기간은 짧아지는’ 고달픈 시기가 되리라고 예견하기 때문에 경제력을 오랫동안 지닐 수 있는 자기능력제고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고달픈 ‘40 이후’를 맞지 않기 위해 30대에 자기재투자에 힘써야 하지만 직장의 현실은 감원한파가 몰아치는 상황. 결국 가정별로 각자 뛰는 수밖에 없다. “30대가 좀더 자기계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치원무상교육이나 지속적인 주택가격안정 등 사회적 간접지원책이 필요하다.”(여교수)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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